책으로 예술을 말하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예술 활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장애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업을 위한 직무 교육 위주로 수업을 받다 보니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요. 계양다사랑복지센터에서 진행한 ‘책으로 예술을 말하다’ 프로그램은 장애여성들에게 예술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오늘은 북아트 수업 날. 시작 30분 전부터 학생들이 속속 자리를 채웁니다.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고 하는데요. 최지혜 학생 역시 늘 일찍 와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일찍 오게 돼요. 비즈공예처럼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북아트 수업이 정말 좋아요. 동그라미 세모 네모 책을 만든 것이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이 제 작품을 보시고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얘기해주셔서 뿌듯했답니다.”
계양다사랑복지센터에서 진행한 ‘책으로 예술을 말하다’는 성인으로 넘어가는 20세부터 34세의 장애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을 대상으로 했는데요. 조병이 담당자는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제약으로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장애여성들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종이접기도 많이 하고 책도 주변에서 쉽게 접하잖아요. 그래서 장애여성들이 북아트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표현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 여성들이 그리기, 만들기, 글쓰기, 표현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나만의 책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매시간 간단한 작품을 두 점 정도 완성했습니다. 점차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하나의 작품을 진득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데요. 보통은 홍승희 강사가 책을 읽어주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각자의 삶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피노키오 북을 만들었어요. 책을 펼치면 코가 길어지는 팝업북이죠. 그래서 거짓말과 관련된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거짓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어요. 또 여행을 주제로 북아트를 했을 때는 여행 경험,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주제를 나누며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주제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눈 뒤에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지도가 이어졌습니다.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학생들이 각자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밀착 지도했습니다. 가위질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서툰 학생, 책의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학생 등, 학생들 각자가 가진 어려움은 모두 달랐습니다. 홍승희 강사는 맞춤형 지도를 하면서, 특히 구체적으로 질문하여 학생들이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피노키오를 그린다고 한다면 표정은 어떤지, 지금 어떤 배경에 있는지 등을 자세하게 질문하는 거예요.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요. 또 마지막에는 내가 완성한 책에 제목을 붙였어요. 각자 만든 책을 소개해 보기도 하고요. 학생들의 삶, 생각, 상상들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이지요.”
홍승희 강사는 특히 장애학생들이 보여주는 색감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색깔을 선택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많은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여성 학생들은 거침없이 색을 칠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여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서 특별한 예술적 감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표현의 방법이 새롭고 독창적이기 때문이지요. 홍승희 강사와 조병이 담당자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성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비장애인들은 색을 고르면서도 ‘이 색은 너무 촌스럽지 않을까’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그런데 장애학생들은 달랐어요. 색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죠. 색감도 굉장히 좋아요. 사실 스티커 하나를 고르는 데도 의미가 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고르는 것이니까요. 매시간 학생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의 감각으로 꾸민 작품들은 모두 독창적이고 아름다워요.”
“학생들이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색달랐어요.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꾸미는데, 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표현 자체가 굉장히 새롭기 때문에 더욱 독창적인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이 자기의 이야기로 동화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갖게 되었지요.”
발달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적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는 발달장애인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미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공감대가 크지 않기 때문이지요. 북아트 수업 과정을 통해서 장애여성들이 예술적 표현 방법을 배우고,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홍승희 강사는 발달장애인에게 예술 활동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술 활동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 활동은 자기 가치를 느끼게 하고 자존감을 높여주거든요. 예술에는 정해진 틀이 없잖아요. 자기 표현을 하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삶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비장애인들도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삶이 행복하듯이, 장애인들 역시 잘하는 일을 찾고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매시간 완성한 작품들을 집으로 가져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부모님,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내가 만든 작품을 선물하면서 편지를 함께 적어 보내기도 했다는데요. 내가 완성한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행복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최지혜 학생은 이번 수업에 참여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늘었다고 얘기합니다. 북아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요. 또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몹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북아트를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즐거웠고요. 또 같은 복지관에 다니면서도 잘 몰랐던 분들과 이번 기회에 더 친해져서 좋았어요. 서로 만든 작품을 보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어요. 제가 보기에도 너무 잘 만들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칭찬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싶었어요.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하니까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아서 더욱 기뻐요. 열심히 해서 꼭 자격증을 따고 싶어요.”
학생들은 마지막 수업 날에 자격증 실기 시험을 치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북아트지도자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물론 2급 취득만으로 당장 강사로 활동을 하기는 어렵지만, 자격증 취득은 학생들에게 성취감을 줄 것이라고 조병이 담당자는 얘기합니다.
“학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렇게 자존감이 높아지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일들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북아트 수업이 학생들의 새로운 도전에 물꼬를 터줄 거라고 기대해요.”
예술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표현해보도록 합니다. 사람들과 작품을 주제로 대화하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또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합니다. 예술 활동은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요. 장애여성들에게 직무 교육도 중요하지만, 예술 활동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장애여성들이 멋진 예술가로 거듭났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