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아우름강동장애인부모회

고흐의 터치! 마티스의 콜라주!

깊은 호흡, 소통으로
함께한 시간

끈기있게 물고 늘어질 때 배울 수 있는 것

한층 높아진 가을 하늘이 모두를 반기던 지난 10월 어느 토요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화방에는 특별한 화가들이 모였습니다. 발달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5명의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캔버스를 화사한 색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림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데요. 인상주의 대표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는 한편, 각자가 좋아하는 요소를 그림에 넣어 재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아우름강동장애인부모회가 기획해 지난 6월부터 매주 총 15번의 수업을 진행한 ‘발달장애 청소년 작품 활동 지원 프로그램’ 수업시간 모습입니다. 수업을 이끌고 있는 김미화 강사는 이번 프로그램이 수강생들로 하여금 진정한 예술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체험형 교육이 아니라 미술에 관심있고 깊이 공부하고 싶은 친구들이 ‘작업 활동’을 경험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몇주씩 그림 한 장을 그려요. 강사와 의견도 조율하고 그림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는 습관과 과정을 심어주고 싶다는 게 바람이었거든요.”

대부분의 장애인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 매주 하나씩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달리 이번 프로그램은 총 16회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수강생 당 2개의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실제 작가들이 미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에 장애인 수강생들에게 더 큰 발전의 기회가 됩니다.

수강생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와 또 다른 표현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의 전시전도 관람했습니다. 관람한 뒤에는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해 보기도 했습니다.

“표현주의는 말 그대로 어떤 순간이나 인상을 자기가 해석해서 그려내는 거잖아요.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다르게 그릴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장애가 있는) 우리 친구들 하고 결이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거장의 작품을 공부하고 따라 그리다보면 본인이 묘사하고 표현해야 할 것들을 찾는 눈을 기르는 연습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프로그램의 이같은 장기적인 진행방식은 카카오뱅크와 한국장애인재단 덕분에 구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여자 수, 완성되는 작품의 수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 기회자의 의도를 존중해줬기 때문입니다.

예술하면서 ‘소통’도 배워요

예술가는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소통을 하지만 작품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대중과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많은 작품 중에서도 딱 이 작품을 출품한 이유는 무엇인지, 작품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전달하는 것이 결국 전시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그간 열심히 수강생들이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회가 장식할 예정입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배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전시를 기획하는 시간도 따로 마련했어요. 수강생들에게 전시 제목은 무엇으로 하면 좋겠는지 물어보고, 관객 초대장에 어떤 말을 쓰면 될지도 함께 고민해요. 실제 작가가 되면 이런 기획 능력이 참 중요해요. 열심히 만든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지를 생각해야하죠. 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니 여러 과정들을 배워서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미술로 넓어진 우리의 세계

평소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이주원 군(13)은 프로그램을 통해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고흐 특유의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서 유치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버스 그림을 그리는 것이예요. 평소에는 집에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수업 시간에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요. 일본 삿포로에 여행을 갔는데 그때 버스가 지나다니던 걸 그렸어요.”

주원군은 선생님이 그림을 그릴 때 직선 부분을 먼저 그리거나, 색칠을 할 때 넓은 곳을 먼저 칠하라는 식의 기술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계속 수업을 나오고 싶다고도 합니다. 전시회를 하면서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본인 작품을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요.

발달장애가 있는 수강생 류시원 군(16)의 어머니 임혜미 씨는 수업을 통해 매번 진지하기만 하던 시원 군이 융통성을 배워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폐성이 있는 친구들은 강박적인 부분이 있어요. 시원이도 미술을 할 때 각도, 기울임, 명암같은 기본 개념을 습득하고 공식에 입각해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특성이 있죠.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꼭 책대로 안해도 돼, 시원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라고 말씀해 주셔서 시원이도 여유를 가져도 된다는 걸 배우고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님은 시원 군에게 이번 수업이 딱 맞았다고 합니다.

비장애인 친구들에 비해 속도는 조금 느릴지라도 자신이 고집하는 방식과 완성도를 고집하며 결국 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원 군은 미술을 워낙 좋아해 평소 일반 미술 학원을 다니기도 하는데요. 경쟁과 속도에 신경을 써야하는 학원에서와 달리 프로그램 시간 동안에는 마음껏 원하는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사물을 깊게 관찰하고 파악한 내용을 긴 시간 들여 작품에 녹여낸다고 하네요.

“하고 싶다고 모두가 다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시원이가 선정돼서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아이 자존감도 많이 올라가고 성취감이 많이 생겼어요.”

‘나만의 세상’이 강했던 수강생들이 예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세상’을 배웁니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개인은 소통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죠. 모두의 재능 수강생들이 예술을 통해 자라고.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한 사람이 돼 있기를 응원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