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모두에게 다가온 위협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때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불평등하게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그저 또 ‘불편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같은 수준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일다, 2024.06.04.).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영향과 피해가 취약계층이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후불평등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재해들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2022년 8월 집중호우는 여러 반지하 주택을 침수시켰으며, 이로 인해 서울 신림동에서 발달장애인 세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마다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더욱 위협하고 있으며, 거주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 또한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에게 더 큰 위협이 되었으며 방재 체계에서 비수도권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프레시안, 2025.04.24.). 특히 장애인은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 정책으로 인해 또다른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 기후위기 속 불평등의 최전선에 서있는 장애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재난에 취약한 지하·반지하에 주거하고 있는 장애인가구의 비율은 2.7%로, 약 70,819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가구의 약 21.6%에 달하는 수치로, 재난에 취약한 주거환경에 놓인 다섯 가구당 한 가구가 장애인가구인 셈입니다(더인디고, 2023.05.15.). 폭염으로 인한 장애인 온열질환 환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두 달간(5월15일∼7월13일)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 중 4.6%가 장애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1.3% 증가한 수치로, 무더위가 이제 막 시작된 점을 생각하면 온열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한겨레, 2025.07.16.). 이렇듯 장애인이 기후재난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기후재난 대응 체계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에는 장애인이 빠져있습니다(한겨레, 2025.07.16.). 또한,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전국민을 대상으로 동일한 온도 기준에 따라 재난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으며, 취약계층(주로 저소득층 및 노인)에게 폭염 키트를 제공하거나,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일다, 2024.06.04.).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이용하지 않은 경우보다 열에 더 취약하며, 무더위 쉼터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정책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장애유형별 기후재난 대응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아 해당 정보에 접근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미디어생활, 2023.06.22.).
✅ 또 다른 불평등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기후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이 장애인 등 건강 취약계층에 차별을 가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 제외되는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브릿지경제, 2023.11.20.). 예를 들어 이제는 익숙해진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는 대표적인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사례입니다. 각종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제품이 환경파괴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플라스틱 빨대는 종이, 유리, 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구가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빨대는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음료를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개발된 것으로, 플라스틱 빨대가 개발되기 전에는 음료를 마시다가 폐에 액체가 고여 폐렴에 걸린 채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었습니다. 플라스틱 빨대의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종이 빨대는 질식의 위험이 있으며, 유리 빨대는 치아 손상, 실리콘 빨대는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유연성이 없어 쉬운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교통 분야에서 디젤 등 내연기관차의 판매와 운행 축소 및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의 확대는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이동권 제약의 소지가 있습니다(브릿지경제, 2023.09.24.).
📌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녹색전환을 위하여
기후위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맞물려 기후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인에게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과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그에 대한 대응에서조차 배제되는 이중의 소외를 겪고 있습니다. 재난정보에 대한 접근권, 이동권, 주거권, 건강권 모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장애인을 포함하는 녹색전환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이 기후위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재난 대응 매뉴얼도 장애유형을 고려하여 제작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 시설 설계에 있어서 접근성과 이용성을 고려하고(미디어생활, 2023.06.22.), 에코에이블리즘이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정책 설계에 있어서 장애인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