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원은 장애 등록부터… 제도의 첫 문턱
등록 장애인의 장애 범주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등록 장애인의 범주에 관한 기준은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해당 법에서는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부에서 인정하는 장애의 범위는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발달장애 등 15개의 장애 유형에 해당하는 15개의 장애뿐입니다(에이블뉴스, 2025.08.12.). 15개의 장애에 해당하지 않으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더라도 장애 등록을 할 수 없으며, 여러 지원 정책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제약이 있는 장애를 등록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미디어생활, 2024.02.12.).
📌 15개 유형에 갇힌 장애 판정_의료 중심 평가의 한계
한국의 장애인등록제도는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 현황 파악이 가능하며, 수요예측을 통한 효율적 예산 편성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장애유형 및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며, 지원의 빈익빈 부익부 발생의 우려가 있고 잠재적 수요자에 대한 욕구 대응 가능성이 낮은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미디어생활, 2024.02.12.).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장애를 판정하는 기준에 있을 것입니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따르면 장애 여부는 일선 의료기관과 국민연금공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2인 이상 관련 과목 전문의와 심사전문인력 등이 X-Ray, CT, 수정바델지수, IQ 등 서류 및 영상의 심사자료를 바탕으로 회의를 통해 장애를 판정하게 됩니다(데일리굿뉴스, 2023.06.05.). 개인이 경험하는 기능적 제한이나 사회적인 제한이 아닌 의료적인 관점에서 장애를 판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계선지능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이 정신에 기능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장애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유가 이것입니다(데일리굿뉴스, 2023.06.05.). 물론, 예외적으로 장애로 인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뚜렛장애의 경우 소송을 통해 장애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후 장애 등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뚜렛장애인들은 장애인으로 등록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022년 기준 투렛장애 환자는 1만3143명이지만, 한국뚜렛병협회가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2년 투렛장애 등록 신청자는 129명 중 95명만이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여성신문, 2024.05.30.). 또한, 보건복지부가 고시 등을 개정해 희귀질환자에 대한 장애정도 기준을 마련한 후 고시로 열거된 희귀질환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장애 등록을 허용하게 되었으나, 개별 질환의 특성과 질환자의 일상 및 사회생활의 제약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해당 질환과 유사한 유형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경증) 장애인’으로 일괄 등록하는 방식으로 장애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미디어생활, 2024.02.12.).
📌 진단서를 넘어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해외의 장애 판정
한국이 장애 판정을 의료적 손상 중심으로 운영하는 반면에 미국은 실질적인 일상생활능력과 직업 수행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장애판정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교통·고용·복지 등 영역에 따라 장애 판정을 별도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복지수급자격을 부여하는 장애인등록제도는 없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소득보장급여를 제공하기 위한 자격 기준으로 연방 차원의 통일된 장애 판정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보장청의 장애판정은 주요한 삶의 활동과 실질적인/상당한 제약을 기준으로 합니다. 장애 판정 시 의학적 기준과 직업적 기준, 실질적인 소득활동이나 일상생활이 가능한가를 확인하기 때문에 장애의 범위가 넓으며, 인구 대비 서비스 대상 규모가 큰 상황입니다. 지원체계의 경우 주정부의 장애판정 기준에 따라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 부분도 많으나, 기본적으로 연방정부격인 사회보장청의 판정 기준에 따라 소득보장 급여의 자격이 결정됩니다(에이블뉴스, 2025.05.15.).영국과 독일 또한, 장애 기준을 신체적 손상의 유형이나 의료적 진단 자체보다 개인이 경험하는 기능적 제한이나 사회적 참여의 어려움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장애인에 대한 정의에서 치료 방법이 확립되지 않은 난치병도 장애인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특정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도 장애 범주에 포함하고 있습니다(에이블뉴스, 2025.09.12.).
📌 장애 범주 확대, 장애인 지원으로 가는 첫걸음
한국의 장애유형은 1982년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정신박약/심신장애의 5개 유형, 2000년 지체, 시각, 청각, 언어장애, 정신지체, 뇌병변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의 10개 유형, 2003년 기존 10개 유형에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의 5개 유형이 추가된 15개 장애유형이 등록 가능한 장애가 되었습니다. 또한, 2020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반영해 정부가 투렛증후군을 ‘정신장애인’으로 장애인 등록을 허용했으며, 2021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지체장애 유형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정신장애 유형에 기질성 정신장애, 강박장애를 포함시켰고 2021년 12월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배제 조항으로 지적돼 온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되었습니다(미디어생활, 2024.02.12.). 그리고 올해 10월 법 개정을 통해 ‘췌장 장애’가 16번째 장애유형으로 등록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애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장애를 경험하는 당사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장애유형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장애 범주의 확대는 단순히 법적 유형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실제 삶과 경험을 제도 안으로 끌어오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제도의 틀 속에서 누락되거나 지원받지 못했던 다양한 장애 경험을 포용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적시에 제공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행정적·재정적 부담과 장애 판정 과정에서의 노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제도의 정당성을 높이는 길은 장애 범주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세심한 정책 설계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단순한 열거형 확대를 넘어, 개인의 기능적 제약과 사회적 참여 어려움을 고려한 실질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