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박아무개(29)씨는 음식을 십고 삼키는 것, 스스로 화장실에 가야 하는 순간을 인지하고 말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잘게 잘라먹어야 하고, 평소에 기저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활동지원 종합조사 중 ‘음식물 넘기기’ 항목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배뇨’ 항목도 비교적 상태가 좋은 2번(4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박씨는 처음 종합조사에서 12등급을 판정받은 후 재심사를 거쳐 9등급, 이의 신청을 통하여 6등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처음 12등급에 비해 6등급이 올랐으며, 150시간의 활동지원급여가 330시간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첫 조사에서 박씨의 장애 정도와 지원 필요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입니다(한겨레, 2025.10.22.).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9월 1일 기준 종합조사에 집단진정을 넣은 314명 중 162명의 서비스 구간이 상향됐습니다. 절반 이상이 활동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은 것입니다. 이번 집단진정을 통한 재심사에서 한 번에 4∼5등급이 오른 대상자도 10명이나 됩니다(한겨레, 2025.10.22.). 이처럼 종합조사 결과가 재심사를 통해 크게 바뀌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는 처음 조사 단계에서 장애인의 실제 상태와 지원 필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장애인 활동지원 종합조사의 한계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활동지원 시간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1~15구간이라는 등급에 갇혀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행 종합조사는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를 측정하지 못하며, 조사결과가 방문조사관 개인의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종합조사의 문제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의 쌍둥이 자매임에도 활동지원 구간이 4구간이나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사실상 사문화된 2인 1조 원칙 등의 문제도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에이블뉴스, 2025.05.29.). 이와 관련하여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2014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의학 중심의 장애 판정 체계가 장애인의 욕구와 맥락을 배제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에이블뉴스, 2025.07.16.).
✅ 필요를 측정하지 못하는 종합조사
활동지원 시간을 결정하는 종합조사의 조사 항목은 ‘일상생활동작(옷 갈아입기, 식사하기 등)’ ‘인지행동특성(주의력, 환각·망상 등)’ ‘사회활동(직장생활 등)’ 등으로 구성어 있습니다. 각 항목의 점수를 합산해 15구간으로 나누고, 구간에 따라 서비스를 차등 지원하게 됩니다. 장애계에서는 이러한 종합조사 조사 항목이 무엇을 못하는지에 대한 기능 제한에 초점을 맞춘 조사라고 지적하며, 피조사인에게 열패감을 준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장애 유형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항목으로 조사하는 방식은 장애의 특성과 그에 따른 욕구를 반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실제 삶의 필요보다 기능 제한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체 장애가 심해도 인지행동특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1구간에 속하기는 힘들며, 반대로 지적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에도 실내 이동과 같은 일상생활동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항목에서는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4년 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 중 82.6%가 12구간(하루 5시간)~15구간(하루 2시간)에 속했으며, 하루 11시간 이상은 3.11%, 1구간에 속하는 장애인은 24명(전체의 0.01%)에 불과했습니다(경향신문, 2024.01.28.). 특히 그중에서도 정신장애인의 경우, 신체적 및 인지적 제약이 비교적 적어 보여 종합조사 결과 점수가 낮게 측정됩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위해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측정할 수 있는 항목이 종합조사에 없기 때문입니다(에이블뉴스, 2024.02.12.). 정신장애인의 경우 가사, 식사, 위생관리, 인지기능 저하, 대인관계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급성기나 야간에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정신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종합조사를 통해 서비스 수급 자격과 급여량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지금의 종합조사는 정신장애인의 장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에이블뉴스, 2024.02.28.).
✅ 조사 방식의 한계
보건복지부는 매년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를 통해 종합조사 시 종합조사 지침 등을 충분히 숙지한 국민연금공단 직원을 2인 1조로 구성하여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해당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장애인 활동지원 종합조사 실시 건수 대비 2인 1조 비율’에 따르면, 종합조사가 도입된 2019년 7월부터 2024년까지 5년 반 동안 2인 1조 방문 비율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전체 방문조사 중 42%가 2인 1조였으나, 2024년에는 17.2%로 10%대에 그쳤습니다. 2024년 전체 7만 8734건의 방문 조사 중 약 83%(6만5209건)가 공단 직원이 나홀로 방문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2인 1조가 아닌 나홀로 방문조사를 할 경우, 종합조사 원칙을 해칠 뿐만 아니라 종합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적인 주거공간을 방문할 시 인권침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나홀로 조사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김예지 의원실이 최근 5년 이내 활동지원 종합조사를 받은 장애인 187명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1%가 나홀로 방문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과정 중 불편했던 경험을 묻자 '조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29.4%)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무례하고 위압적인 태도'(10%)와 '장애에 관한 차별과 비하발언'(10%)을 느꼈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불편함을 느낀 응답자 중 39%가 공단 직원에게 대응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이유로 ‘활동지원 급여량에 불이익이 생길까 두려워서’(33.2%), ‘조사자가 권한을 가진 위치에 있어서’(19.8%), ‘신고방법을 몰라서’(17.6%), ‘혼자라 무서워서’(12.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더인디고, 2025.10.01.). 이처럼 종합조사의 2인 1조 원칙이 무너진 현실은 조사 과정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삶을 세밀하게 반영해야 할 조사 절차가 오히려 불안과 위축을 동반한 점수를 받기 위한 시험과 같이 변질되고 있는 것입니다.
📌 진짜 삶을 지원하는 첫걸음
현행 종합조사는 장애인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없는가’를 측정할 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박씨의 사례처럼, 같은 사람에게서도 종합조사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현실은 종합조사가 장애인의 실제 삶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애의 특성과 삶이 반영되지 않은 채 일률적인 항목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누군가의 하루를 숫자로 단순화하는 일이며, 2인 1조의 원칙이 무너져 조사자 개인의 판단에 따라 판정이 달라지는 조사방식은 판정결과의 불합리함을 낳고 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단순히 지원 서비스의 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의 생존과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며, 이러한 활동지원서비스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장애인이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종합조사는 일률적인 점수 매기기를 넘어, 장애인 개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확인할 수 있는 도구로 다시 설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종합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장애인의 일상에 꼭 맞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야 말로 장애인의 ‘진짜 삶’을 지원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