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 만에 폐지된 의료급여 '부양비'
그동안 의료급여 등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할 때, 실제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나 부모 등 부양의무자의 소득 일부를 수급자의 소득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이른바 '간주 부양비'는 이른바 '유령 소득'으로 불리며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 왔습니다(뉴스핌, 2026.01.09.).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6년 만에 의료급여 부양비를 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2026년 1월부터 적용되는 이번 부양비 폐지로 저소득층이 부양의무자의 소득 때문에 의료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던 불합리가 개선되고, 수급 대상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향후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간소화해 서류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에게만 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부양의무자 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25.12.09.).
이번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를 두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수급자의 소득으로 간주하던 부양비만을 폐지하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번 제도 개편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가상의 소득으로 계산하던 방식을 없앤 것이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가 전면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 의료급여의 문턱,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급여(2015년), 주거급여(2016년)는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전히 폐지됐으며, 2021년 생계급여는 부분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 기준에 따라 적용하지 않는 구간을 두고 있습니다(복지타임즈, 2021.09.30.). 이 때문에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기보다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7년까지 전면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계급여는 교육급여, 주거급여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소득·재산과 무관하게, 본인 가구의 경제적 상황만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로 전환되며(연합뉴스, 2025.08.27.), 의료급여만 유일하게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게 됩니다.
부양비가 사라져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유지되는 한
의료급여의 사각지대는 쉽게 줄어들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가족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라 해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수급을 받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2025.12.09.). 특히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지원을 거부하거나 연락이 끊긴 경우에도, 수급권자 스스로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따릅니다. 법적으로는 가족이지만 사실상 가족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관계임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신청 자체를 포기하고 생활고를 감내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소셜포커스, 2020.07.22.).
실제로 인천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건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해당 가구는 이혼한 전 배우자가 부양의무자로 분류된다는 이유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청을 포기했고, 주거급여만으로 생활을 이어가다 극심한 생활고에 놓인 끝에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소셜포커스, 2020.07.22.).
📌 의료 사각지대와 재정 부담 사이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에서 상당한
의료비 부담이 개인에게 전가되고, 의료급여에서 배제된 저소득층은
치료 접근 자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 채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이른바
'생계형 체납자' 문제도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지적돼 왔습니다
(소셜포커스, 2020.07.22.).
반면 정부는
재정 부담과 제도 지속 가능성을 이유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할 경우 생계·의료급여를 포함해 연평균 수조 원대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입니다.
의료 필요도가 높은 계층에서 급여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점, 이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와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소셜포커스, 2020.07.22.).
이처럼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싼 논의는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와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맞서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치료 접근권 보장이라는 목표와 제도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은 오랜 시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는 시작일 뿐이다
26년 만에 이뤄진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는 가족의 소득을 '가상의 소득'으로 간주해 의료 접근을 가로막아 왔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를 해소한 것은 아닙니다. 교육·주거·생계급여가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벗어나는 동안, 의료급여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를 계기로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 치료 접근권 보장과 재정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의료급여가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