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헌법은 모성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보호해야 할 권리로 규정하고, 국가에 그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 정신과 달리, 장애여성이 '엄마가 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은 10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제도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세계일보a, 2026.01.28.).
장애여성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의료·제도적 지원을 받을 권리를 명문화한 법안은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단 한 번도 제도화되지 못했습니다. 2010년과 2012년 각각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장애여성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겪는 의료 접근의 어려움과 높은 유산 위험, 인공임신중절에 내몰리는 현실을 지적하며 특별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22대 국회에서도 '장애여성지원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세계일보a, 2026.01.28.).
제도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지만, 장애여성의 모성을 보호해달라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재생산권 관련 항목을 꼽은 응답이 42.7%에 달했습니다. 자녀양육 지원을 비롯해 출산 비용과 산후조리, 임신·출산 전문 의료기관 마련, 관련 교육과 정보 제공 등 재생산권과 관련된 실질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세계일보a, 2026.01.28.).
그럼에도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여전히 제도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생산의 전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비장애여성과 다른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는 부재한 상태입니다. 그 사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개인의 권리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취급되어왔습니다.
📌 장애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권리
최근 생리대는 '공공재'로, 월경을 비롯한 재생산권은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전히 "현실은 멀다"고 말합니다. 특히 장애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권리로 존중되기보다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세계일보b, 2026.01.28.). 장애여성의 재생산은 제도, 의료 환경, 사회적 인식이 서로 맞물리며 여전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법이 허용한 차별, 모자보건법 14조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해 온 대표적인 조항으로 지적됩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 이전까지 임신중절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었지만,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됐습니다. 또한 심신장애로 의사 표현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본인 동의 없이도 보호자나 부양의무자의 동의만으로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 조항은 장애를 이유로 재생산권을 제한하고,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배제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전문가들은 해당 조항이 장애와 질환을 동일시하며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세계일보b, 2026.01.28.).
✅ 월경과 임신, 권리가 아닌 통제의 그림자
장애여성에게 월경과 임신 경험은 그 자체로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생리를 시작하면 "왜 하느냐",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거나, 활동지원사로부터 불편함을 이유로 월경을 중단할 수 없느냐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말과 태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인권침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세계일보b, 2026.01.28.).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의 경우 관리의 편의를 이유로 식사 제한, 호르몬 약물 투여 등을 경험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으며, 2010년대까지도 시설에서는 장애여성을 상대로 한 강제 불임 시술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여성 당사자는 어떤 시술을 받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통제의 대상이 됐으며, 출산을 한 경우에도 이후 불임 시술과 생활 통제가 반복됐습니다. 이는 장애여성의 재생산이 오랫동안 개인의 선택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음을 보여줍니다(세계일보b, 2026.01.28.).
✅ 현실과 동떨어진 생리·위생용품 지원
현재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생리·위생용품 지원은 월 1만 원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장애여성에게 필요한 특수 생리대와 보조용품은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높습니다. 장애여성들에게 생리대 무상 지원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희망씨에 따르면 장애여성의 생리 비용은 한 달 평균 4만원 이상입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2.5배 넘는 비용이 들지만, 지원 기준이 장애여성의 실제 생활 조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부담은 개인에게 남겨지고 있습니다(세계일보b, 2026.01.28.).
✅ 임신·출산 과정에서의 의료 접근성 부족
장애여성과 보호자에게 산부인과 진료는 '넘어야 할 장벽'에 가깝습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한 보호자는 생리 이상으로 검진을 시도했지만, 진료 의자에 앉히는 것조차 어려워 진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초음파 검사 등 신체 접촉과 장비 사용이 필수적인 산부인과 특성상, 장애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없는 의료 환경에서는 진료 시작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낮이 조절이 되지 않는 검사대,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진료실과 같은 비장애여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의료 시스템은 장애여성을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중앙일보, 2025.06.27.).
이러한 산부인과 의료 접근성의 문제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2022에서 2024년까지 3년간 장애여성의 산부인과 이용률은 평균 14.8%로, 비장애 여성(24.6%)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정부가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지정하고 있지만 전국 10곳에 불과하며, 이 중 절반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요양급여 의뢰서가 필요해 접근성은 더욱 제한적인 상황입니다(중앙일보, 2025.06.27.).
📌 허락받는 사회에서 선택하는 사회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는 단일한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법과 제도, 의료 시스템, 사회 인식이 동시에 작동하며 만들어낸 구조적 배제의 결과입니다. 헌법이 보장한 모성보호의 원칙과 달리,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예외이자 관리 대상으로 취급되어왔습니다. 국회에 반복해서 발의되고도 폐기된 법안들은 제도의 공백을 보여주며, 의료 현장에서 반복되는 접근성 문제와 통제의 경험은 그 공백이 개인의 삶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독립된 권리로 명확히 위치시키는 법과 제도적 전환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원을 넘어, 장애여성의 삶 전반을 기준으로 한 종합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장애여성의 월경, 임신과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을 포괄하는 기본법 제정과 함께, 무장애 산부인과 확대, 의료진의 장애 감수성 교육, 생활 조건을 반영한 생리·위생용품 지원 기준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여성을 보호의 객체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관점 전환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장애여성이 사회의 허락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