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도전, 모두가 승리자🏅
2023 베를린 스페셜올림픽 골프 선수단
스페셜올림픽 현장(출처 :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지난여름, 독일 베를린에서 특별한 올림픽이 열렸다.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참가하는 스페셜올림픽이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총 12개 종목에 출전해 메달과 리본 100개를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중 골프 대표팀은 무려 8개의 메달을 따내며 도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스페셜올림픽 골프 선수단의 안선숙 코치와 이양우 선수를 만나 뜨거웠던 올림픽 현장의 이야기와 장애인 스포츠가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스페셜올림픽
‘스페셜올림픽’은 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더불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인정하는 3대 올림픽이다. 올해는 하계대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으며 6월 17일부터 25일까지, 170개국 7,000여 명이 총 22개 종목에 참가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스페셜올림픽은 낯설다. 다른 올림픽에 비해,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언론 보도가 적다 보니 주목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 스페셜올림픽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올림픽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사업가였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제안으로 1968년부터 열렸으며, 1975년부터는 4년마다 개최해 왔다. 하계대회에서는 골프, 육상, 배드민턴, 농구 등의 종목을, 동계대회에서는 알파인, 크로스컨트리스키, 스노보드, 피겨스케이트 등의 종목을 다룬다.
스페셜올림픽 현장(출처 :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이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를 ‘승리자’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금메달이라는 표현보다는 첫 번째 승리자(1st Winner)라는 표현을 지향한다.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3위권 밖의 선수들에게도 ‘네 번째 승리자’ ‘다섯 번째 승리자’라는 이름으로 리본을 선물한다. 올해 우리나라 선수단이 메달과 리본 100여 개를 얻어냈다고 얘기하는 이유다.
결과보다는 도전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모두가 승리자’라는 의미를 담아 표현한다. 참가 선수 모두는 날마다 자신을 단련하여 국제대회 무대에 선 아름다운 도전자이자, 진정한 승리자인 셈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모든 선수가 응원과 박수를 받고 승리를 축하하는 진정한 스포츠 축제이다.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골프 선수단
스페셜올림픽 골프 선수단은 16세 양채연 선수부터 39세 장진혁 선수까지, 성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장애 정도도 서로 다른 선수들로 꾸려졌다. 선수 선발의 기준은 철저히 성적순이다. 국내 대회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고 출전했다. 골프 선수단은 국내에서 3박 4일간의 적응훈련을 했다. 안선숙 코치는 선수 개개인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코칭했다.
안선숙 코치
“초보 레벨의 선수들은 기본기를 잘 익히고 실수만 안 나오게 해도 점수가 잘 나올 거예요. 하지만 실력이 좋은 선수들은 좀 다르죠. 기본기만으로는 안 돼요. 기량을 늘리려면 섬세한 연습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실력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지도하며 기량이 향상될 수 있도록 했어요. 개개인의 컨디션을 올릴 수 있는 운동으로 훈련하기도 했습니다.”
안선숙 코치는 각 선수별로 특별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을 존중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수가 오늘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는 놓치지 않고 칭찬하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예컨대 연습 시간보다 일찍 나온 선수가 있다면 그 성실하고 부지런함을 칭찬하고, 이런 칭찬이 좋은 기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다. 독일의 숙소까지 장시간 이동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거나, 현지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골프 선수단의 맏형인 장진혁 선수가 나서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장진혁 선수가 동생들을 많이 챙겼어요. 호텔에서 마시는 생수병, 음료수병을 재활용 기기에 넣어 돈으로 바꾸어서 간식을 사 오기도 했고요. 가장 모범적으로 열심히 연습에 임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단에서 맏형으로, 역할을 잘해주었어요.”
안선숙 코치의 말에 따르면, 장진혁 선수는 최상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생계를 위한 일을 하느라 대회에 출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셜올림픽 선수단에 선발되어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연습했고, 대회에서 네 번째 승리자가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운동을 놓치 않고 좋은 기량을 펼친 그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스페셜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실력 차이를 고려해 등급제로 운영한다. 골프는 레벨 1부터 레벨 5까지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레벨 1은 초보 선수들의 데뷔 무대인 셈이고, 레벨 5는 베테랑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의 장인 셈이다. 그래서 레벨 1과 레벨 5의 선수들은 실력 차이가 크게 난다.
국제 무대에 선 이양우 선수
이양우 선수는 최상위그룹인 레벨 5에 출전했으며, 네 번째 승리자에 등극했다. 전체 기록으로는 7위에 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골프를 시작하여 스물다섯이 된 현재는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이양우 선수는 골프가 재미있고 팔을 쭉 뻗었을 때의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 또 골프를 막 시작한 선수들에게는 “그냥 열심히 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이양우 선수의 연습량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왼쪽부터) 안선숙 코치, 이양우 선수
“진짜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일주일에 5일은 무조건 연습해요. 시합이 있을 때는 2주에 한 번 쉬고 꾸준히 운동하지요. 양우는 정도가 심한 장애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몇십 배를 노력해야 하더라고요. 몸으로 겪으며 직접 감각을 익히도록 정말 꾸준히 단련해 왔습니다.”
이양우 선수는 4년 전, 아부다비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때도 최고 레벨로 출전했다. 그러니 올해로 스페셜올림픽 두 번째 출전이다. “2023 SEOUL PGTA Adaptive CLASSIC 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이지만, 때로는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도 있었다. 그럴 때는 잠깐 휴식하며 재충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양우 선수
“스트레스가 쌓여서 연습장에서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행동을 안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감정 표현과 조절이 어려웠거든요. 너무 힘들어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쉬었어요. 그렇게 10년간 운동을 해온 거죠.”
발달장애인 골프 선수의 경우, 부모님이 캐디를 맡는 경우가 많다. 골프 종목의 특성상 용도에 맞는 골프채를 선택하는 등 캐디의 역할과 소통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양우 선수의 부모님 또한 10년 동안 선수를 뒷바라지하며 골프장을 다녔다. 골프클럽을 챙기고 연습 스케줄을 조율하는 일 역시 부모님의 몫이었다.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 덕분에 이양우 선수는 올해 벌써 큰 대회에 두 번이나 출전했다. 6월에는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했고, 7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제2회 U.S. Adaptive Open Championship DP 참가하여 중하위권 성적을 냈다.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올해 두 번의 국제무대 경험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더 큰 대회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편견의 반대편엔 따뜻한 응원이
안선숙 코치는 오랜 기간 장애인에게 골프를 지도해 왔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재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운동과 지도에 열정을 쏟게 되었다. 특히 발달장애 청소년의 골프 훈련 방법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논문을 썼을 정도다. 안선숙 코치는 장애인 스포츠 활동에 대해서 전보다는 인식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이양우 선수, 안선숙 코치
“제가 처음 장애인 골프단을 만들어서 학생들을 코칭할 때만 해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있었어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다는 듯 티를 내는 분들이요. 장애인 선수들이 특별히 방해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눈빛을 보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과거 골프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는 장애인이 무슨 골프를 하느냐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늘 따뜻하게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을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수의 실력을 알아보고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 해주는 골프장, 선수의 꿈을 지지해 주며 물질적으로 후원해 주는 이들이다. 특히 안선숙 코치의 활동이 알려지자, 주변 지인들은 후원회를 결성해서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해 올림픽 골프 선수단을 후원했다.
“골프를 통해 만난 지인분들이 후원회를 결성해서 모금하셨어요. 그 돈으로 선수단을 위한 골프화와 골프 모자, 골프 양말 등을 구입해 주셨지요. 골프할 때 필요한 인솔을 구입해서 후원해 주신 분들도 있고요.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분도 있겠지만, 분명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SK텔레콤 Adaptive OPEN 2023 전국발달장애인골프대회 현장(사진 출처 : SK텔레콤)
안선숙 코치는 장애인 골프 코칭을 하며 편견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장애인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갈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두 자녀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울리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계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장애인의 날에 행사하고 특별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직접 만나고 서로를 겪어봐야 해요. 생활에 함께 녹아들어서 지내다 보면 스스럼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스포츠 스타 더 많이 탄생하려면…
사실 이양우 선수처럼 장애인 골프 선수로 활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운동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등을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양우 선수의 어머니는 이 대목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고마운 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물심양면으로 이양우 선수를 후원해 준 분이다. 덕분에 이양우 선수는 해당 골프장에서 무료로 라운딩하며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
“로얄링스 CC의 정재섭 회장님이 양우의 골프 실력을 알아봐 주시고,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해주셨어요. 만약 후원이 없었다면 골프를 계속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희 가족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안선숙 코치 역시 스포츠 활동이 장애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더 널리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운동에 재능을 보여도 프로 선수가 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을 설명했다.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지원금이나 개인의 후원이 없어서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선수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에게 골프만 가르쳐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비장애인처럼 장애인 역시 실업팀에서 활동할 기회가 많아지거나, 국제대회에서 수상했을 시 혜택이 주어진다면 선수들의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인 변화와 알맞은 제도가 뒷받침되어 선수들의 직업활동이 보장되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승리자
한때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기사에 “아쉬운 은메달”이라는 제목이 붙어 화두에 오른 적이 있었다. 세계 2위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1등만이 최고라는 생각이 전제가 된 표현이었기에 경쟁 사회를 살아가며 각박해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신 ‘자랑스러운’ 은메달이라는 표현을 쓰자는 얘기도 나왔다.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일을 하고 박수를 받는다. 이 경험은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우리 사회에도 응원의 메시지가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에 주목하고, 내게 주어진 것보다 노력으로 일군 것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한다면, 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도 자존감을 지키고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승리자’라고 말하는 스페셜올림픽의 정신이 새삼 귀하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1등이 아니라서 ‘아쉬운’ 사람이 아닌, 최선을 다해서 도전한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좋겠다. 그것이 스페셜올림픽의 가치이자, 스페셜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세상에 던지는 아름다운 메시지일 것이다.
(왼쪽부터) 이양우 선수, 안선숙 코치
취재 : 이경은,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