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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로, 삶의 반경을 넓히다🏡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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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로, 삶의 반경을 넓히다🏡

이동 약자의 무장애 편의시설 정보제공 및 환경개선을 위한 모니터링 사업





경사로 설치 사진



지난 10월,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무지개 카페는 평소보다 더욱 분주했다. 2023년 한국장애인재단이 지원하는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경사로가 설치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본 사업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의 지역 조사 활동을 기반으로 총 14곳 업체에 경사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경사로 설치율 얼마나 될까?


2018 보건복지부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국 19만여 개 건물 중 편의시설 설치율은 80.2%, 적정설치율은 74.8%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편의시설을 설치해야만 하는 일부 건축물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기에 장애인 이동권, 접근권이 여전히 개선되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예전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직장에서도 회식을 같이 못 했어요.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새로 짓는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대부분 있어 식당으로 들어가기 훨씬 나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요.”





(왼쪽부터) 김주은 씨, 유영순 씨




이번에 모니터링 요원으로 참가한 김주은 씨와 유영순 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얘기한다. 유영순 씨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김주은 씨와 3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만한 식당이 없어 식사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제가 주은 씨와 같이 다니면서 느낀 건데요. 장애인이 밥을 굶고 다니는 일이 참 많더라고요. 경사로가 없어서 휠체어로 식당에 들어갈 수 없거나 들어가더라도 내부 통로가 좁아 휠체어로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요. 한 시간을 돌아다녀도 마땅한 식당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김밥을 사다가 공원에서 같이 끼니를 때우기도 했어요. 비장애인들은 모르는, 장애인들만 겪는 어려움이죠.”



사업을 기획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경사로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식당에 방문했다가 비치되어 있는 경사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평상시에는 접어져 있고 필요할 때만 펼쳐서 사용할 수 있는 경사로는 본 사업의 모태가 되었다.




무더위 속에 발로 뛴 모니터링 요원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2인 1조로 팀을 구성해 서대문구 지역 내 여러 업체를 직접 다니면서 편의시설을 조사하고, 설치 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으로부터 사업은 시작되었다. 모두 3개 팀이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약했다. 김갑선 담당자는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 팀으로 묶은 이유가 있다고 얘기한다.





김갑선 프로그램 담당자



“솔직한 말씀으로,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사정을 알기가 어렵거든요. 이 턱을 휠체어로 넘기가 얼마나 힘든지 비장애인이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겠어요. 반대로 장애인으로만 모니터링 요원을 구성하면 이 역시 조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가게에 진입을 못하니까 업주를 만나서 상담, 설득 자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모니터링 요원은 조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명찰을 착용하고 기관 홍보물을 준비해서 업체를 찾아다녔다. 그야말로 한 집 한 집 방문해서 눈으로 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는 없었다. 무더운 여름에 조사가 이루어졌기에 전동 휠체어가 과열될까,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서 조사를 했다.



“전동 휠체어는 배터리로 다닙니다. 휠체어는 바로 뒤에 배터리가 있어서 여름에 많이 돌아다니면 지열, 직사광선 등에 의해서 휠체어가 손상될 수 있어요. 모니터링 요원과 평가회를 열었을 때, 한 분이 자기 경험을 얘기해 주셨어요. 너무 열심히 조사하러 다니다 보니 배터리가 과열되어서 전동 휠체어가 길에서 멈췄다고요. 그 후 다른 팀들도 햇볕이 뜨거운 시간을 피해서 조사를 하자며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죠.”



김주은 씨와 유영순 씨 팀은 100여 군데가 넘는 업체를 직접 찾으며 열성을 다했다. 하나의 업체를 여러 번 방문하는 일도 다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 방문한 횟수는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왼쪽부터) 김주은 씨, 유영순 씨




“첫 방문을 했을 때 사장님이 안 계시면 시간 약속을 하고 다음에 다시 방문하고, 또 방문하고 그랬어요. 정말 둘이서 발로 뛰었죠. 한 분 한 분 만나서 얘기를 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컸습니다.”



장애인이 자주 이용할 만한 업체 위주로 문을 두드렸다. 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곳은 피하고 휠체어로 내부를 이용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경사로가 설치되면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 등 많은 이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경사로가 꼭 장애인만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요즘 노약자도 많은데 보행 보조기를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유모차나 캐리어를 미는 사람도 경사로를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기에 업체에 찾아가 사업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사진 자료를 찍어오고 정말 열심히 했죠.”



뇌성마비인 김주은 씨는 손과 발의 사용이 어려워서 휠체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다. 활동지원사 유영순 씨는 경사로가 있으면 누군가의 도움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지만, 경사로가 없으면 도움조차 받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어떤 건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경사로가 없었어요. 그때 주변에 계신 분들이 도와주셔서 휠체어를 들어서 옮기려고 했죠. 그런 상황이 생기면 휠체어에 타고 있는 주은 씨가 너무 위험하고, 또 불안해해요. 자칫 휠체어에 탄 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또 아무 때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경사로가 있으면 그런 불안감 없이 다닐 수 있으니까 너무나 다행이죠.”




320건의 조사 끝에 14곳 선정


하지만 모든 업주가 경사로 설치에 적극적인 건 아니었다. 때로는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모니터링 요원도 마음이 위축되기도 했다.





모니터링 요원 김주은 씨




“우리는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경사로가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고 얘기를 하고, 경사로 설치를 권유해도 싫다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사실은 경사로에 대해서 잘 몰라서, 혹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죠.”



‘우리 가게에는 여태 장애인이 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경사로는 불필요하다’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업주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모니터링 요원들은 모임을 갖고 서로의 애환을 나누기도 했다.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거부 의사를 들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김갑선 담당자는 경사로 때문에 사고가 날까 우려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김갑선 프로그램 담당자




“비 오는 날 경사로에서 미끄러져 고객이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밤에 경사로를 못 보고 발을 헛디딜까 봐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죠.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얘기가 많잖아요. 애초에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면 이런 걱정을 안 하게 될 텐데 말이에요. 고객의 사고를 걱정하는 업주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인식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모니터링 요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업체를 찾아다녔다. 무더운 여름날, 열정을 다해 조사한 끝에 모두 320건을 조사했고, 그중 56건을 선정 회의에 올려 최종 선정을 논의했다. 17곳의 업체를 선정했으나 이 중 3곳이 사정상 변동사항이 생겨서, 현재 최종 14개 업체를 선정하게 되었다.



경사로 설치 업체를 선정한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대로변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 ‘유동성’, 둘째는 이용객이 많이 찾는 업종인 ‘점포 이용률’, 세 번째는 매장 안에 휠체어 이동 공간이 있는지 여부를 고려한 ‘내부매장이용가능성’이다. 각각의 항목에 점수를 매겨 최종 선정하였다. 업주의 적극적인 의사 표명과 장애에 대한 인식이 높은지 여부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카페, 칼국수집, 족발집 등의 식품 관련 업체, 약국, 안경점 등의 실생활에 꼭 필요한 업체 등이 선정되었다.



김주은 씨는 선정된 업체 중 하나인 무지개 카페에 경사로가 설치된 모습을 보고 “무척 기분이 좋다”고 얘기했다. 유영순 씨 역시 “경사로가 생기면 장애인이 경험하는 소외감, 불안감이 덜할 것이다”라며 기뻐했다.




인터넷에서도 편의시설 확인할 수 있도록


이번 조사 내용을 지도화하여 구글맵에 표기하는 일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동 약자가 지도를 보고 편의시설 유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구글맵




“어디에 갈까 뭘 먹을까 하고 구글맵을 눌렀을 때, 상세 설명이 나와요. 그곳에 편의시설을 입력하게끔 되어 있지만 그동안 아무도 입력을 안 했던 거죠. 경사로나 장애인 화장실 유무 등 현재 서대문구 지역의 업체 정보들을 입력해 나가는 중입니다.”



앞으로 구글맵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다음 지도에서도 편의시설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나아가 김갑선 담당자는 이번 설치된 경사로를 관리하고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폐업 시 업주가 반납하도록 약속했다고 한다.



한편 이날 경사로를 설치한 무지개 카페 사장 김리정 씨는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서 손님 한 명이 오더라도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무지개 카페 사장 김리정 씨




“이전에 경사로를 설치했는데 실제 장애인 고객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폭이 너무 좁은 거예요. 경사로에 대해서 잘 모르다 보니 시행착오를 한 거죠. 그래서 경사로를 새로 하고 싶었는데 비용적인 부담 때문에 고민하던 찰나, 모니터링 요원분이 저희 가게에 오셔서 제안을 해주신 거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경사로를 설치하게 되었어요.”



기존 경사로는 폭이 좁아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하기 어려웠다. 김리정 씨는 경사로가 생겨 수많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캐리어를 가지고 오는 고객, 유모차를 미는 고객 등 많은 분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가끔 장애인 손님이 오시면 불편하게 이동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앞으로는 더욱 편안하게 방문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경사로가 설치되어서 참 좋습니다.”




사회와 관계 맺도록 도와주는 편의시설


김갑선 담당자는 경사로가 장애인 삶의 반경을 넓혀주는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같이 생활하고 호흡하며 인간관계를 넓혀나가려면 경사로 등의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인은 여전히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수동 휠체어에서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면, 삶의 반경이 훨씬 넓어지지요. 100미터 거리에서 1키로까지 다닐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더 인간관계가 넓어지겠죠. 특히 장애인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어요. 다만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춰지면 마음껏 활동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업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김주은 씨, 유영순 씨




유영순 활동지원사는 지체장애인 중 외출하기 어려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지내는 이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지체장애인들의 입장을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50년을 천장만 바라보며 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깝고 안쓰럽더라고요. 한 발만 나가면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데, 그 한 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지체장애인에게 너무나 힘든 일인 거죠.”



김주은 씨 역시 외부 활동을 좋아하여 여러 모임에 참석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이동이 어려워 활동지원사가 늘 동반한다. 이런 그에게 전동 휠체어는 가장 소중한 도구이다. 이번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받은 소정의 활동비로 김주은 씨가 자신의 휠체어 바퀴를 수리한 이유다.



적정 설치 더욱 늘어나길


올해 9월부터 ‘2023년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현황 조사’가 전국 17개 시·도 226개 지자체별로 시행된다. 장애인 등 편의법 제11조에 의거해 5년마다 실시되는 조사다. 과연 지난 5년 동안 장애인 편의시설은 얼마나 더 개선되었을지 조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법적 기준에 맞게 적정 설치되었는지에 따라 장애인이 체감하는 변화는 다르게 측정될 것이다.



편의시설은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을 넘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동 약자가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한국장애인재단은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인권 증진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물리적인 장애를 거두어내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첫걸음일 테니 말이다.





취재 : 이경은,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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