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그대로 괜찮은 사람들과 함께한 하루🧸🍭
모두 다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그대로 괜찮은 가을 소풍’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 단체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어른들과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 나이도 성별도 제각기 달랐지만 소풍을 기대하는 마음만큼은 같았다. 한국장애인재단과 캠페인 크리에이터 ‘디마이너스원’이 함께한 “그대로 괜찮은 가을 소풍” 날이었다. 가을 하늘이 파랗고 맑던 토요일의 소풍을 기록해 본다.
그대로 괜찮은 가을 소풍 참가자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요!
오늘의 소풍은 발달장애 아동과 형제·자매, 보호자, 그리고 디마이너스원의 구성원이 함께했다. 아동들과 함께 ‘짝꿍’을 이루어 놀이공원에서 토요일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디마이너스원의 김동길 공동대표는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놀러 온 한 사람’으로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바깥에 나와서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동안의 함께 해 온 활동들은 장애아이들끼리만 놀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모두 모여 있는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에서 그저 ‘놀러 온 한 사람’으로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풍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디마이너스원) 김동길 공동대표, 김효원 짝꿍
디마이너스원은 그동안 ‘그대로 괜찮은 쿠키’의 수익금을 기부하고, 장애아동을 위한 베이킹 클래스, 크리스마스 파티 등을 열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한 외부 활동으로 놀이공원에서 보내는 행복한 가을 소풍을 마련했다. 정성운 송파인성장애인복지관 담당자는 장애아동의 문화 활동에 대한 요구가 크다며 오늘의 소풍을 반겼다.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했어요.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니,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들떠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요. 기관에서 이용자 욕구 조사를 하면 문화 활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나타나요. 하지만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움도 있지요.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로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오게 되어서 무척이나 기대되고 기쁩니다.”
짝꿍이 정해지고 디마이너스원 구성원과 아동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봉사자들은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과 짝꿍이 되어 놀이공원을 누빌 봉사자들은 부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의 특성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송파인성장애인복지관 정성운 담당자
놀이공원 입장하기 전 재미있는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다. 첫 만남에 조금은 서먹할 수 있었던 분위기는 금방 달아올랐다. 모두가 손을 높이 들고 가위, 바위, 보를 냈다. 진행자를 이긴 팀이 과자를 고르자 현장에서는 “맛있겠다!”는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은 짝꿍과의 호흡이 잘 맞는지 확인해 보는 ‘둘 중 좋아하는 것 말하기 게임’! 벌써 마음이 통한 것인지, 한목소리로 같은 단어를 외친다. 입장을 기다리면서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친근하고 화기애애했다. 디마이너스원의 김장한 공동대표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자!”고 외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특별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았다.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갖는 가을 소풍 짝꿍들
놀이기구 타며 서로에게 더 가까이
드디어 놀이공원에 입장하자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서 놀이공원 필수 아이템 머리띠를 골라본다. 짝꿍의 머리에 씌워주기도 하고, 어울릴 법한 것을 서로 추천해 주기도 한다. “나 어때?”하고 물어보자 “귀엽지!”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머리띠 하나 고르는 일만으로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기념품을 고른 짝꿍들은 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바빴다.
기념품을 고르고 있는 가을 소풍 짝꿍들
드디어 첫 번째 놀이기구를 탈 시간! 짝꿍끼리 타고 싶은 것을 골라서 함께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놀이기구를 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자는 말에 아이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고 얘기한다. 한시라도 빨리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는 얘기다. 놀이공원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오롯이 느껴진다.
10분여 줄을 선 끝에 드디어 열기구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간 어른들은 무서워하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며 아이들은 ‘다음에는 무엇을 탈까?’ 고민한다.
(디마이너스원) 이지우 매니저와 양서진, 이채원 짝꿍
디마이너스원 이지우 매니저는 짝꿍과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마음이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얘기한다. 조금은 무섭고 겁이 나는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서로에게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저는 기차에서 안 내리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놀이공원에 자주 왔었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다 좋아요. 완벽해요! (가을 소풍 참여 아동)”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렸는데요, 아마도 열기구 탈 때 마음이 통한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놀이기구를 잘 타는 편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짝꿍이 먼저 무섭다고 표현해 주니까 왠지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이지우 매니저)”
장애인 탑승예약제로 더욱 빠르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몇몇 아이들이 솜사탕 가게로 가서 각자 원하는 것을 골랐다.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집중해서 살펴보더니, 완성된 솜사탕을 받아 들고는 벤치로 가서 먹으며 잠시 휴식했다. 한쪽에서는 지도를 펼쳐 들고 다음에는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인지 고민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놀이기구 탑승 중인 가을 소풍 짝꿍들
놀이공원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장애인 탑승 예약제를 시행했다. 장애인 및 동반자의 편의를 위해 예약된 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장애인 복지 카드를 소지한 이와 동반인 최대 3인에 한해서 이용할 수 있다. 예약을 하고 다른 것을 구경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편리했다.
김동길 공동대표와 한예담 매니저는 짝꿍들과 모두가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장애, 비장애 구분할 것 없이 수많은 아이가 함께 뛰어노는 공간이었다. 김동길 공동대표는 “장애, 비장애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져 장난도 치고, 무슨 놀이할지 얘기도 나누고요. 서로를 편견 없는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이런 자리가 더 많아지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변화할 테지요. 오늘과 같은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다림도 즐거움의 일부
한편, 솜사탕을 맛있게 먹은 가을 소풍 짝꿍들은 다음 놀이기구를 타러 이동했다. 둥근 바구니에 타면 회전하는 놀이기구인데, 손잡이를 돌리면 더 빠르게 회전하는 방식이다. 같은 팀의 짝꿍이 더 빨리 회전하고 싶어 열심히 손잡이를 돌리다가도, 다른 짝꿍이 어지러워 멈춰 달라고 하면 손잡이 돌리기를 늦춰 주었다. 놀이기구 타기에도 서로를 향한 배려는 필수이다.
(디마이너스원) 이성민 매니저와 김채안 짝꿍
어떤 놀이기구가 있는지 살펴보고, 무엇을 타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조율하고,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도 가본다. 이 모든 과정이 놀이공원 안에 있었다. 어쩌면 놀이기구를 타는 일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때론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고, 때론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더 많이 더 자주,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놀이공원에서 보낸 시간이 아이들에게 인생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따뜻한 시선과 함께한 하루
팀별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중식, 양식, 분식 등 메뉴도 다양하다. 주문을 마치고 짝꿍과 음식을 기다렸다. 반나절을 함께 보낸 짝꿍과 더욱 가까워진 탓에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눴다. 중식당을 찾은 한예담 매니저는 소풍을 오기 전 걱정도 많았지만, 기꺼이 함께 동행한 귀여운 짝꿍 덕분에 너무나 즐겁게 지냈다고 얘기한다.
(디마이너스원) 한예담 매니저와 김효준 짝꿍
“소풍을 오기 전에는 조금 걱정도 있었어요. 일 대 일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요. 그런데 저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어요. 먼저 손잡아주고 안아주니까 정말 고마웠어요. 놀이공원에 와서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괜한 우려를 했구나 싶었죠. 덕분에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후 엄마와 아빠를 만난 아이들은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정성운 송파인성장애인복지관 담당자는 “발달장애 아동 중에는 낯선 환경이나 소음에 취약하여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늘은 아이들이 짝꿍들 덕분에 즐겁게 하루를 보낸 것 같다”며 소감을 얘기했다.
(디마이너스원) 이지우 매니저, 이채원 짝꿍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다
한 편, 부모들은 봉사자들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같은 복지관을 이용하면서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이들과도 이야기하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가을 소풍 참여 아동 어머니 강영림 씨는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며 기뻐했다.
“아이들 데리고 외부 활동을 다니기도 하지만, 이렇게 장애, 비장애 같이 섞여서 노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놀이공원에 오면 시끄럽다고 힘들어했는데 오늘은 의젓하게 잘 다니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오늘의 행사는 장애 아동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도 함께할 수 있었기에 의미가 더욱 깊었다고 얘기한다. 장애 아동 간의 만남의 장일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도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가을 소풍 참여 아동 어머니 김동아 씨는 오늘의 소풍이 참 든든했다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가을 소풍 참가 아동 부모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한자리에 모여 고민하는 것이 감동이었어요. 따뜻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답니다. 늘 가족끼리만 다니다가 내 아이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엄마들끼리도 이렇게 만나서 얘기해 보는 게 처음이었어요. 또 아이들끼리도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되었으니 더욱 좋고요. 교류의 기회가 열려서 무척 기뻐요.”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보통은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장애 형제·자매와 함께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대로 괜찮은 소풍은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하나로 어우러져 하루를 보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어우러져 놀 수 있는 놀이공원이 만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대로 괜찮은 가을 소풍 참가자들
직접 경험해야 알게 되는 것
디마이너스원 김동길 공동대표는 최근 유럽에 다녀온 후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유럽의 관광지에서는 장애인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에펠탑을 가든 루브르를 가든 휠체어를 탄 사람은 항상 있었어요. 그분들이 미술관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모두가 양해를 해주는 모습이었지요. 하지만 오늘 놀이공원에서는 휠체어 타신 분을 보지 못했어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했을 때,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로 나와서 같이 어우러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디마이너스원 한예담 매니저 또한 직접 경험하며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현장에 와서 장애아이들과 같이 놀이기구를 타고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는 것들은 머리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디마이너스원) 김동길 공동대표, 한예담 매니저
“오늘 저는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채워지고 힐링하고 가는 기분이에요. 오랜만에 아이들과 얘기하고 놀아보기도 하면서 행복 에너지가 채워진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하기 전에는 왠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했었는데, 편안하고 재밌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몰랐을 거예요.”
김동길 공동대표는 오늘과 같은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을 때, 사회적으로도 더욱 관대한 시선이 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주변의 분위기가 따뜻해진다면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편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보통은 동기가 행동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데 저는 반대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장애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저 ‘그대로 괜찮은 쿠키’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제가 쿠키를 만들면서 장애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행동할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행동이 동기를 만들고,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짝꿍들은 오늘 하루 같이 보낸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고마웠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먼저 손잡아주고 안아준 아이들을 보면서 봉사자들은 마음 따뜻해지는 선물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대로 괜찮은 가을 소풍 짝꿍
모두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자 찾아오는 놀이공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장애 아동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 비장애와 관계없이 누구나 ‘놀러 온 사람’으로서 서로를 대하고, ‘즐거운 놀이를 함께하는 사람’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면 좋겠다. 파란 하늘이 멋졌던 토요일 열린 ‘그대로 괜찮은 소풍’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취재 : 황신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