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 받았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나답게 자립하기 🎁
시각중복장애청년 자립준비교육 '나답게 갓생살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올곧이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각중복장애청년들은 성년의 나이를 지나서도 자립의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한국장애인재단이 지원한 ‘나답게 갓생살기’는 20~30대 시각중복장애청년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시각중복장애청년들의 자립
시각중복장애청년들은 복지 프로그램에서 제외될 때가 많다. 프로그램의 참여자를 모집할 때, 신변처리가 가능하고 일상생활 훈련이 수월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성인기의 장애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립을 위한 교육을 받고자 해도 제대로 된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안선영 담당자는 자립 지원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껴왔다고 얘기한다.
사전 평가로 시작하는 맞춤형 교육
참가자 각자에게 맞춤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개인별 수행 능력 평가를 앞서서 진행했다. ‘모바일 평가’ ‘보행 성취도 평가’ ‘Eyberg 행동 검사’ ‘도전적 행동 동시 사정 척도’ ‘인지력’ ‘언어력’ ‘사회화 기술’ 등 모두 7개 부문에서 평가가 이루어졌다.
모바일 평가를 통해서 스마트폰 사용 경험을 살펴보고 활용 능력을 테스트했다. 보행 성취도 평가에서는 보행의 기초 지식이 있는지, 독립 보행이 가능한지를 평가했다. Eyberg 행동 검사에서는 일상생활 기술과 상호작용 기술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도전적 행동 동시 사정 척도 평가에서는 도전 행동 여부와 정도를 파악했다. 인지력, 언어력 평가에서는 수 개념과 발음, 답변의 내용 등을 진단하고, 사회화 기술 부문에서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의 정도를 알아봤다.
자립 준비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다섯 가지로 스마트폰 활용 교육, 일상생활 기술 교육, 안전한 이동을 위한 교육, 생활 에티켓 교육, 자립 단기 체험이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배우지 못했던 영역들을 전문 강사진의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선영 담당자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일상생활과 가장 관련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얘기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생활 에티켓 교육도 이루어졌다. 시각장애인이기에 눈으로 배울 수 없었던 에티켓을 익히고 시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식사나 간식을 먹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명절에 친인척의 집에 방문했을 때나 조문하러 갔을 때 절하는 방법도 연습했다. 시각중복장애청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동작을 손으로 직접 만져주면서 알려주었다.
일상생활 기술 교육은 스스로 외출 준비 및 식사 준비 등을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옷을 입고 벗는 법, 옷의 앞뒤를 구분하는 법, 단추나 지퍼를 채우는 법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했다. 청소기나 세탁기를 이용해 본다거나 편의점에 가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해 본 참가자들은 무척 뿌듯해했다. 김준석 참가자 어머니는 프로그램 참여 이후, 아들이 스스로 양말을 빨기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이다원 참가자의 어머니 또한 자녀의 생각과 행동이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집에 와서는 설거지도 자기가 하겠다고 하고, 양말도 꼭 스스로 빨아요.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끼더라고요. 그 뒤부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요. 예를 들어 식사를 준비할 때 채소는 자기가 씻겠다고 얘기하는 식이죠. 양말을 빨 수 있게 되었으니, 다른 것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예전에는 제가 말을 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했는지 화를 냈어요. 그런데 자립 체험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제 말을 새겨들으려고 하는 것이 보여요. 자립 체험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나니 상대방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나답게 갓생살기' 자립 단기 체험
‘나답게 갓생살기’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2박 3일 동안 이루어진 자립 단기 체험이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익힌 기술을 토대로 자립을 단기 체험하며, 독립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2인 1조로 숙소에서 생활하며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거나 침대에서 자고 난 뒤 이불을 정리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꼭 필요한 기술들을 재차 점검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김준석 참가자는 직접 요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고 한다.
“부대찌개와 스파게티, 쭈꾸미볶음을 만들었어요. 밀키트를 사용해서 요리했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짐을 싸고 정리하는 방법도 배웠는데요. 너무 많은 짐을 꺼내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짐만 꺼내서 챙기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상생활 기술 교육을 통해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기 등을 이미 학습했기 때문에 자립 체험은 더욱 수월하고 즐겁게 다가왔다. 또한 참가자들이 여가생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도록 노래방 가기, 향수 만들기 등의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다원 참가자는 노래방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노래방에는 그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요. 다 같이 가니까 재미있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도 불렀어요. 짝꿍 언니랑 같이 생활하니까 말하기도 편하고 좋았어요.”
또 다른 참가자는 “양파를 썰고 고기를 볶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향수를 만들 때 냄새가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안선영 담당자는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춘 것이 좋은 반응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재료를 하나하나 구매해서 음식을 만든다면 너무 어렵잖아요. 하지만 밀키트로 요리하면 더 편하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밀키트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거예요. 자립 단기 체험을 하는 숙소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보니, 참가자들이 ‘이런 곳이라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일상생활을 위해서 배울 것이 매우 많잖아요. 너무 어렵고 복잡하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놓으니 ‘재미있었다’ ‘더 배우고 싶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저는 그게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고 생각해요.”
작은 변화가 가져온 '가능성'
2박 3일 동안 자녀들과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일은 부모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장애가 있는 자녀가 혼자서 잘 지낼지 걱정이 되고 불안했지만, 막상 너무나 의젓하게 체험하고 온 모습을 보며 대견하기도 했다는 반응이다. 김준석 참가자의 어머니는 자립 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며 ‘잘하고 왔구나’ 싶어 안도감과 더불어 감동이 느껴졌다고 얘기한다.
일상생활교육(의복관리)
안선영 담당자는 자립이 반드시 혼자서 무엇이든지 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인에게 자립이란 내가 원하는 일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결정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에 효율성을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장애, 그중에서도 중복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효율성을 따지면 너무 힘들어요. 느린 학습자인 참가자들에게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데 이걸 효율성의 잣대로 바라보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이겠어요.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될 때까지 노력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불러왔다. 사소한 일 하나를 해냈을 때의 만족감과 기쁨이 더 많은 일에 도전할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답게 갓생살기’는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선물했다. 시각중복장애청년들은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청년으로서 당당한 출발을 알렸다.
취재 : 황신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