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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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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을 위한 따뜻한 나눔, 기부는 행복입니다.💌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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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삶을 위한 따뜻한 나눔, 기부는 행복입니다.💌

박화연 희망기금 ‘장애 아동·청소년 의료비 지원’



박화연 기부자, 가족(조성우)


한국장애인재단으로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박화연 기부자가 재단을 통해 5000만 원을 “장애 아동 및 청소년의 의료비 지원을 위해 기부하고 싶어요”라며 기부금을 전달해 주었다. 한국장애인재단은 전달받은 소중한 기부금으로 ‘박화연 희망기금’을 만들고, 3년간 저소득 장애 아동과 청소년에게 재활 치료 및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박화연 기부자와 아들(조성우)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기부와 나눔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근검절약하며 모은 돈

박화연 기부자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20대에 서울로 올라왔다. 아들 셋을 낳고 얻은 막내딸로 부모님께서도 귀하게 기르셨다. 그러던 중 중매로 남편을 만나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어언 6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일이다.



박화연 기부자


“남편의 사촌 누나가 우리 친정 동네로 시집을 온 거예요. 그분이 나를 착하게 봤는지 남편을 소개해 준 거죠. 그렇게 중매로 만났는데 남편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따라나섰죠.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여름에 밭을 매고 농사짓고 다들 그렇게 살았잖아요. 서울에 가면 힘든 농사일 안 하겠구나 싶어서 올라왔지요. 그때 시부모님이 그러셨어요. ‘네 남편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그저 너희 힘으로 잘 살아야 한다.’라고요. 쌀 한 가마니를 주시면서 네가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서 돈을 모아 보라고만 하시더라고요.”



막상 서울에 올라와 보니 남편은 이웃을 돕느라 정작 자신은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박화연 기부자는 시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그래서 더욱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고 절약하며 돈을 모았고, 시장에서도 업종을 바꾸어 가며 열심히 일했다. 어물 가게를 했다가 고추 장사도 해보고, 꽃 가게도 운영하면서 60세가 될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아들이 바라본 어머니는 늘 근검절약하는 분이다. 이제 연로하셨으니 택시 타고 편하게 다니셔도 좋으련만, ‘헛돈 쓰는 일’이라며 한사코 버스나 지하철로만 다니신다. 또한 정직하고 부지런한 분이다. 시장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언제나 귀감이 되는 어머니셨다.



박화연 기부자 가족(조성우)



(아들 조성우)

“몸이 힘들 때는 누구나 편한 것을 찾게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도 택시를 절대 안 타세요. 택시 타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지키시는지 자식의 입장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근검절약하시는 만큼, 정말 부지런하세요. 시장에서도 부지런하게 일하셨고 지금은 운동을 꾸준히 하시지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다니시니, 그 덕분에 연세에 비해서 정정하세요. 또한 정말 헌신적으로 자식들을 키우셨어요. 그러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가족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도와주고자 애를 쓰는 분이라고 아들은 얘기한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선뜻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몸이 따라 움직이고 선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자녀들 역시 선하고 올곧은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웃의 일에 발벗고 나섰던 마음씨 좋은 부부

박화연 기부자 부부는 시장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하며 자녀들을 키웠다. 시장에서는 ‘마음씨 좋은 부부’로 알려졌다. 특히 남편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발 벗고 나서곤 했다.



박화연 기부자



“동네에 경사가 있든, 누구에게 힘든 일이 있든, 가장 먼저 달려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시장에서 누구네 집 자녀가 결혼하면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남편이 가장 먼저 알고 위로해 드리고 그랬지요. 그래서 10년 전 돌아가셨을 때, 시장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남편은 분명 좋은 데로 가셨을 거라고 말이에요. 돌아가실 때도 크게 고생하지 않았거든요. 아마도 자기가 남을 많이 보살펴줬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 같아요.”



남편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기에, 아내가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막 상경했을 당시 남편은 용산에서 장사를 하면서 지인의 집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번 돈으로 지인네 여섯 식구가 같이 먹고 사는 형편이었다. 조그마한 문간방 하나를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셋방살이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서울에 올라오신 친정어머니가 귀한 막내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실 때도 있었다. 시골에서도 충분히 잘 살았을 텐데 서울에 와서 어렵게 생활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다. 그럼에도 남편의 좋은 뜻과 선한 마음을 알기에 시장에서는 남편과 같이 장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며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일 모두 본인의 몫이었다.



“이웃들을 돕느라 밖의 일을 열심히 하고, 집안일은 다음 순서였던 남편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지요. 그래도 남편은 마음이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 1년만 더 살았으면 지금 살고있는 좋은 집에서 함께 지내다 돌아가셨을 텐데, 하고요. 이제 살만해졌는데 남편이 먼저 떠났으니 마음이 슬프죠.”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

남편이 떠나고 나니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기부에 관심이 생긴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2023년에는 위기가정 아동들을 후원했고, 올해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기부했다.



박화연 기부자


“남편도 먼저 떠났고,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지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는데 가기 전에 좋은 일 하면 좋잖아요. 그래서 기부의 뜻을 자녀들에게 전했더니, 자녀들도 엄마의 생각을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자녀들 모두 한목소리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하셔라”라고 얘기하며 기부를 흔쾌히 응원했다.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어찌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들(조성우)은 어머니께 기부의 이야기를 듣던 순간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했다’라고 얘기한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마음이 찡해졌다.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지 저도 선뜻 해내지 못하는 일인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시니까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어떻게 모은 돈인지 알기에 마음이 찡했어요. 어찌 보면 그 돈으로 노후를 더 편하게 사실 수도 있잖아요. 좋은 물건 사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에 가고 그렇게 쓸 충분한 자격이 있는 분인데, 어머니께서 당신이 아끼신 돈으로 기부한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나눔 ‘박화연 희망기금’이 만들어지다

어머니가 힘들게 모은 돈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기부금을 더욱 뜻깊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기부처를 알아보았다. 어머니가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해 활동을 하는 기관들을 검색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과 병행하며 1년 여의 시간 동안, 꼼꼼하게 비교한 끝에 한국장애인재단을 선택하게 되었다.



박화연 희망기금 감사패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있는 기관으로 알아보다가 한국장애인재단을 발견했어요. 선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광고를 과도하게 하지 않는 곳’을 추리게 되더군요. 광고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진짜 힘든 상황에 놓인 장애인을 돕는 일에 기부금을 사용해 줄 단체를 찾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재단은 호화로운 광고도 없었고 내실이 있어 보였어요. 장애인들이 다양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재단에 문의하게 되었지요.”



박화연 기부자는 처음부터 장애인이나 장애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장애인을 위한 일에 기부금을 내놓은 이유도 명확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기부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여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이 제때 치료를 받고 건강을 챙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내가 바닥부터 올라왔기 때문에 없이 사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특히 장애인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이 불편해 못 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래서 장애인을 돕고 싶었어요. 작은 도움이지만 치료를 받고 몸이 회복되고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요.”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일. 박화연 기부자가 기부를 통해서 실천한 아름다운 나눔이다. 그의 뜻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장애인재단은 ‘박화연 희망기금’을 만들었다. 개인 기부자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고 세상에 널리 알려, 따뜻한 나눔이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다. 멋진 감사패가 박화연 기부자에게 전달되었다. 감사패를 받은 박화연 기부자와 아들(조성우)은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박화연 기부자



(박화연 기부자)

“너무너무 기분이 좋죠. 생각도 못 했는데, 제 이름으로 기금을 만들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 돈이 도움이 필요한 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잘 쓰이기를 바래요. 재단에서 잘 해주실 것으로 믿고 맡기겠습니다.”


(아들 조성우)​

“감사패를 보니 정말 뭉클해요. 어머님의 모든 인생이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머니가 아끼고 또 아껴서 모은 돈이니 정말 뜻있는 곳에 잘 써주시면, 저희도 두 배로 더 기쁠 것 같아요.”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따뜻한 나눔의 온기

박화연 기부자가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는 “착하게 살고 돈을 아껴 쓰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풍족해지면 사고 싶은 것도 생기고 욕심이 더 많아지기도 하지만, 박화연 기부자는 그런 때에도 한결같이 절약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았다. 그 덕분에 아들(조성우)도 역시 자녀와 함께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부와 나눔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대물림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머니, 당신은 늘 근검절약하면서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았어요. 힘들게 모은 돈을 좀 더 의미 있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 어머니께 많이 배웠지요. 제 딸이 지금 중학생인데요. 저도 딸과 같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기부를 실천 중이에요.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어머님의 가르침을 내 자녀에게도 전해주는 일이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덕분에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마음씨를 물려받은 자녀들. 이제는 그 자녀들이 자식을 낳아,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어머니의 그 따뜻하고 올곧은 성품 덕분에 자녀들은 장성한 지금도 ‘엄마 바라기’라고 한다. 아들(조성우)은 매일 아침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있다.



“아들이 출근할 때 늘 전화해요. 그래서 아침 시간이면 아들 전화를 기다리죠. 이제 정신이 없어서 토요일인 줄도 모르고 전화를 기다릴 때가 있어요. 너무나 고맙게도 딸들도, 손주들도 자주 전화해요. 아이들이 잘해주니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 서로를 위하는 가족

80여 년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을 꼽아보라는 질문에, 박화연 기부자는 나란히 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딸을 다섯 낳은 끝에 얻은 아들이었기에 기쁨이 남달랐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 지금은 박화연 씨 곁에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응원을 해주니, 귀하게 키운 보람이 있다고 한다.



“아들 낳고는 온 천하가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옛날에는 바나나가 귀했잖아요. 그래서 딸들한테는 못 사주고 막내아들만 먹였지요. 딸들이 지금도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해요. 대신 귀하게 키운 만큼 지금도 저한테 잘하니 고맙죠. 재단에 기부할 때도 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아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좋은지 몰라요.”



아들(조성우)은 어린 시절 누나들의 돌봄 덕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밖에 나가 장사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누나들이 막내와 같이 놀아주고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았기에 지금도 대가족의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건 막내 아들 몫이다. 가족을 향한 감사함과 사랑이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한다.



박화연 기부자 가족(조성우)



“어머니 팔순 기념으로 남해 여행을 갔어요.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게 참 좋았어요. 넓은 펜션에 대형 버스도 빌리고 그렇게 온 가족 모두 모여 여행을 갔죠. 4박 5일 일정이었는데 제가 프로그램을 전부 계획했어요. 어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드시니까 기쁘더라고요. 가족들 모두 즐거웠던 추억입니다.”



박화연 기부자의 거실에는 가족 사랑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함께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며, 손주들 어렸을 때 찍은 사진까지, 수많은 추억이 사진 속에 간직되어 있다. 같이 있지 않아도 늘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이가 바로 가족이다. 가족 역시도 언제나 서로를 보살피고 응원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행, 기부

최근 박화연 기부자와 같은 개인 기부자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지난 1년 동안 현금 또는 물품을 기부한 적이 있는 인구 비율은 감소 추세다. 2024년 1월에 발표한 자료를 기준으로, 2013년 34.6%였던 것에 반해, 10년 후인 2023년에는 23.7%로 10.9% 감소했다. 이와 같은 추세로 미루어 보아 기부 경험은 감소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기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부하는 순간, 베푸는 내 마음이 풍족해지고 충만해진다. 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서 5000만 원을 기부한 박화연 기부자도 기부 소감을 밝히며 활짝 웃었다.



박화연 기부자, 가족(조성우)



“기부를 안 했을 때는 몰랐는데 하고 보니까 정말 흐뭇해요. 평생을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기부를 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얘기해 주고 싶어요. 크든 작든 기부를 해보자고요. 기부한 뒤의 뿌듯함을 더 많은 분이 느끼면 좋겠어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자선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미덕 중에 최고의 미덕이다”라고 말했다. 기부의 행복을 엿볼 수 있는 명언이다. 기부하며 ‘주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낀 박화연 기부자만큼이나, 기부를 ‘받게 될’ 많은 이들 역시 행복해질 것이다. ‘기부’라는 따뜻한 손길 덕분에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게 될 테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딱 한 번만 주어지는 인생,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박화연 기부자의 이야기에서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선행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세상을 더 환하게 밝힐 것임을 믿는다.



취재 : 황신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