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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망을 이어붙인, ‘삶’이란 믹스셋🎧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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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망을 이어붙인, ‘이란 믹스셋🎧

휠체어를 탄 DJ’ 브릴리언트 기부자



공연 중인 DJ 브릴리언트(사진 : soap)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공연장.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운 비트에 맞춰 사람들이 저마다 리듬을 타고 있다. DJ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사운드에 사람들은 환호를 터뜨리기도, 말없이 몸을 맡기기도 한다. 이날 공연은 어딘가 특별하다. 보통 부스에 서서 음악을 선곡하고 곡을 믹싱하고 있어야 할 DJ가 휠체어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 한켠에는 휠체어를 탄 관객들도 비장애인 관객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4DJ 브릴리언트가 복귀 기념으로 유명 DJ 크루 SOAP와 함께 기획한 ‘BRLLNT is Back’의 한 장면이다. 파티의 주인공인 DJ 브릴리언트는 공연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불의의 사고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1년이 넘는 공백기를 지나 성공적으로 복귀 공연을 마친 그를 한국장애인재단이 만났다.




독창적인 리듬을 만드는 DJ


브릴리언트는 10년 이상 댄스음악을 만들어 온 프로듀서이자 DJ. 염따의 'don't call me (돈 콜미)', 인디고 뮤직의 '인디고 (Indigo)', 폴 블랑코의 ‘Summer’ 등 곡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는 팝 스타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Like I Do' 라는 곡을 프로듀싱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다.



DJ 브릴리언트



사람들은 그의 디제잉이 독창적이고 새로운 리듬, 감각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라고 평가한다. 익숙한 노래에 새로운 리듬을 불어넣어 낯선 얼굴을 입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물 흐르듯 이어 붙여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정작 그는 그런 사람들의 평가를 들으며 제 음악이 특별하다기보다는, 댄스음악이라는 장르가 아직 새로워 더욱 좋게 평가해 주는 것 같다라며 멋쩍어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전자음악과 댄스음악, 힙합을 특히 좋아했어요. 지금도 유명한 '다프트 펑크'라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하곤 했죠.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성향도 프로듀서가 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중학생 때부터 음악을 만들어 왔거든요. 그때 우연히 작곡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접한 이후로 음악을 만드는 게 제 취미가 됐어요.”



성인이 된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DJ의 길로 접어들었다. 곡을 만드는 프로듀서로서 아티스트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가 만든 음악을 다른 이들에게도 소개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기회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찾아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힙합 아티스트 창모가 디제잉을 할 줄 아는 지인을 알려줬고, 그 지인을 통해 배운 디제잉을 학교 축제에서 처음 선보이면서 매료됐다.


DJ 브릴리언트


디제잉 할 때는 '이거 틀면 신나겠다.' 하는 음악들을 많이 틀어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중음악인데 잊혀 있다가 묘하게 지금의 분위기, 요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음악들을 사람들도 함께 좋아해 줄 때의 카타르시스가 엄청나요. 저는 디제잉을 할 때 집중하느라 친구들이 바로 앞에서 인사를 해도 잘 몰라요. 그런데도 관객들의 반응은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갑자기 환호 소리가 커지고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거든요.”



비극에서 감사함으로

그랬던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디제잉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된 사건이 생겼다. 평소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클럽으로 출근하려던 202310월 어느 날 밤, 사고로 흉추 골절을 입고 가슴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일까. 사고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지만 그는 그날 저녁 7시부터의 기억 일체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나마 뇌리에 남은 기억은 중환자실에서의 짧은 몇 초, 구급차에 실릴 때의 기억 몇 초, 수술대 위에서의 몇 초 정도다.



사고 직후부터 일상에 복귀하기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1년간 의정부, 서울, 파주, 일산 등 병원 다섯 군데를 돌며 재활치료를 받았다. 재활은 먼저 기립성 저혈압을 이겨내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 환자는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 처음에는 누워 있다 앉기만 해도 기절하기 쉽다. 자율신경계의 반사작용이 손상돼 혈압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다리로 쏠린 혈액이 심장으로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간 그는 몸을 일으키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라는 두려움을 수십 번씩 극복하며 앉기 연습을 했다.



재활 치료 중인 브릴리언트(사진 : 브릴리언트)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상체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조금씩 자란 근육은 실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휠체어에서 의자나 자동차로 옮겨 앉는 방법, 샤워하는 방법, 바닥에서 휠체어로 올라와 앉는 방법 등 일상적으로 하던 행동들을 완전히 새로 익혀야 했다. 듣기만 해도 고단함이 느껴지는 이 시기를 이야기하던 그는 뜻밖에도 '감사'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척수 손상도 레벨이 다른데 저는 흉추 손상이라 두 팔은 쓸 수 있었어요. 경추까지 망가졌다면 손까지 쓸 수 없었을 거고 복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훨씬 길었을 거예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여도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감사한 일이죠. 재활 초기에는 '욕창'이라는 큰 어려움을 만났어요. 재활 기간 1년 중의 6개월 정도는 욕창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을 정도예요. 하지만 회복 초기에 그런 경험을 한 게 오히려 감사해요. 욕창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빨리 배웠고, 이후로는 다시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늘 조심하게 됐죠."



DJ 브릴리언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일을 찾을 줄 아는 그의 성격은 회복에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그와 함께 또 다른 힘이 된 것은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이었다. 무던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고 직후에는 정신적으로도 밑바닥을 찍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었던 DJ 브릴리언트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버팀목은 가족들이었다.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걱정과 고충을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치고 난 이후가 더 돈독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다.



친구들의 배려도 그로 하여금 더 힘을 내야겠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됐다. 사고 이후 그의 친구들은 만남 장소부터 대화 주제까지 하나하나 그를 배려했다. 동시에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를 대했다. 친구로서 브릴리언트의 바뀐 일상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곧바로 물었고, 자신들의 생각도 공유해 줬다.




공백기가 무색했던 복귀 무대



DJ 브릴리언트 공연 포스터(사진 : soap)



재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디제잉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일상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사고가 난 지 1년 반 만에 다시 관객들 앞에 서게 됐다.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 온 DJ 크루 '소프(Soap)'와 함께 기획한 공연을 통해서다. 방식도 색달랐다. 보통 그는 디제잉을 할 때 곡 사이에 멘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그를 기다리고 공연을 보러 와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친구 아티스트들이 여럿 참여해 디제잉 사이에 공연을 해줬다는 점도 특별했다.



창모, 폴 블랑코, 수민 같은 아티스트 친구들이 함께 공연해줬어요. 덕분에 단순한 디제잉이 아니라 종합적인 공연에 가까워졌죠. 보통 디제잉을 할 때 멘트를 하지 않는데, 그날은 해야 할 거 같아서 마이크를 잡고 감사 인사를 했어요. 1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주신 팬분들이 잊지 않고 저를 보러 와준 거니까요.”


공연 중인 DJ 브릴리언트(사진 : soap)


휠체어에 탄 관객들이 초청됐다는 점도 남달랐다. 사실 클럽은 그가 아는 장소 중에서도 가장 배리어프리와 거리가 먼 공간이다. 대부분의 클럽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턱이 많다. 어둡기도 하다. 사고가 난 이후로도 친구 DJ들이 공연하는 클럽이 있으면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누구보다 놀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그였다. 복귀 공연을 기획할 때부터 '휠체어를 타는 관객들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휠체어 탄 관객들이 올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시설이 어느 정도는 갖춰진 공연장을 골랐어요. 또 원래 아티스트 대기실로 사용되던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을 휠체어 이용자 대기실로 탈바꿈시켰죠. 무대도 잘 보이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휠체어에 탄 관객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공교롭게 공연을 한 날짜(418)도 장애인의 날이 있는 주간이더라고요.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공연 중인 DJ 브릴리언트(사진 : soap)


그는 공연의 수익금을 한국장애인재단에 기부했다.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가장 잘 아는 그이기에, 누군가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면 경제적인 짐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의미에서다. 기부한 금액이 많지 않다며 멋쩍어한 그는 자기의 작은 기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신적 건강의 중요함을 알게 해준 시간

사고 이후 역설적으로 그는 정신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됐다고 한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신적 건강함의 중요성이다.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그는 소위 말하는'성공한 사람들'의 삶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건 아니었다.자기 삶이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 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에 빠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치고 난 뒤에 그가 느낀 점도 이런 깨달음과 맞닿아 있었다. 재활훈련을 하며 병원에 있는 동안 SNS를 통해 접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은 DJ브릴리언트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삶'이었다. 집 앞 카페에 두 발로 걸어가 커피를 마시고 산책할 수 있는 일상이 모조리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도 '힘들다'며 저마다의 어려움을 토로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그 지점에서 그는 정신적인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평소 생각해 볼 일이 없었던 장애인의 이동권과 사고 후 치료 환경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DJ 브릴리언트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로 가장 불편한 건 아무래도 접근성이에요. 대부분 공간에 있는 턱이 가장 문제죠.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 턱 때문에 집 앞 카페 하나를 가려고 해도 혼자서는 꿈도 못 꿔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아쉬움을 느꼈어요. 대표적인 게 국가에서 치료비를 지원하거나 입원을 보장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치료는 급성기인 6개월까지만 비용이 지원되고, 재활 병원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도 최대 2년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가 조금씩 장애인들에게 더 열린 곳이 되어 가는 과정이 강요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역시 휠체어에 앉기 전까지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불편함을 겪는지 몰랐던 것처럼 비장애인으로서는 장애인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그와 같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다른 일상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음악을 하고 있지만 저는 사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유명해지는 데는 여러 불편함도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치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힘이 됐던 게 장애를 갖게 되고 나서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거거든요. 저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동시에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DJ 겸 프로듀서가 휠체어를 탄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워낙 생소한 케이스다 보니, 앞으로는 그가 하는 행동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하더라도 조금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덧붙였다.


공연 중인 DJ 브릴리언트(사진 : soap)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곡들이 DJ의 손길을 만나 훌륭한 셋(여러 곡을 이어붙여 하나의 곡처럼 만드는 플레이리스트)로 탄생하듯, 우리의 삶도 갑작스러운 사건과 감사한 일들의 얽힘으로 완성된다. 그때마다 필요한 건 DJ 브릴리언트의 조언처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가 매일 휠체어 탄 DJ’로서의 삶을 개척하듯, 우리 모두 매일 아침 새로운 인생의 눈금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먼 미래와 현실의 무게에 압도되기보다는 희망이 샘솟기를 기원한다.




기획 : 황신아, 강인선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