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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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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기부의 힘’💌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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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기부의 힘’💌

극희귀질환으로 재활치료가 필요한 여섯 살 민아 이야기🌻



올해 여섯 살인 민아는 아직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걷기를 지지해주는 보조기기 ‘워커’에 몸을 의지한 채로 어렵사리 몸을 지탱하고 선다. 치료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한 발을 떼는 민아. 맞은편에서 박수를 치는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걸음을 내디뎌 보려 애쓴다. 생후 10개월이면 자연스레 하는 걸음마조차 민아에게는 수만 번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전 세계 약 500명이 앓는 극희귀질환

생후 6개월 무렵, 어머니는 민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았다. 처음에 의심했던 것은 ‘사경사두’. 아이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턱은 반대쪽을 보게 되는 증상인데, 쌍둥이들에게는 종종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뜻밖의 검사를 제안받게 되었다. 머리둘레가 너무 작아 소두증과 유전자 이상이 의심된다는 진단이었다.


워커를 잡고 보행 연습 중인 민아



민아가 돌이 되었을 무렵, 전 세계 약 500명 수준의 극희귀질환인 ‘피트 홉킨스 증후군(Pitt–Hopkins syndrome)’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임신 당시 조산 위험이 있어 100일이 넘는 장기입원으로 아이들을 지켰고, 출산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왔던 어머니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민아의 발달이 늦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신생아 때부터 깊이 잠들지 못하고 음식도 잘 삼키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진단명을 받았는데 극희귀질환이라 정보가 너무 없는 거예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자료 몇 줄이 전부였죠. 막막하고 답답했어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요.”


피트 홉킨스 증후군은 중증 발달지연과 지적장애, 과호흡과 무호흡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언어지연이 심하고 수면장애와 경련 등의 증상을 보인다. 어머니는 그제야 민아의 상태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하고 아픈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지칠 때까지 울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사정을 말이다.


“한번은 민아가 자지러지게 울어 응급실까지 달려갔는데, 알고 보니 변비 때문에 배에 가스가 찬 거였어요. 아픔을 말로 못 하니 울음으로 버텼던 거죠. 지금은 민아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그에 마땅히 대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가끔 기분이 좋으면 흥분 상태가 되어 과호흡이 오기도 한다. 나중에는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과호흡이 이어지자, 어머니는 휴대용 산소캔을 구비해 두었다. 아직까지는 산소캔을 쓸 정도의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머니는 오늘도 민아의 작은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며 혹시 모를 위험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양질의 치료’를 지속하는 것

민아는 현재 주 5일 내내 언어, 감각통합, 도수, 물리치료 등 고강도 재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집보다 치료가 우선일 만큼 민아에게는 절실한 시간이다.


감각통합치료를 받는 민아



“먹고, 앉고, 서는 일상적인 동작조차 민아는 배워야만 할 수 있거든요. 쌍둥이 동생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온종일 민아와 함께 치료 센터를 오가요. 전에는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요즘은 컨디션이 좋은 날이 늘어 다행입니다.”


치료의 질을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는 이동 중 차 안에서 민아와 함께 점심을 해결한다. 우유만 겨우 삼키던 아이가 이제는 잘게 자른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큰 위안이다. 민아를 안고 이동하느라 목디스크를 얻었지만, 치료가 중단되면 발달이 원점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기에 어머니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병원 낮병동은 대기자가 많아 6개월에서 1년이면 퇴원해야 해요. 선생님과 이제 막 적응하고 성장이 보일 때쯤 치료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늘 아쉬웠죠. 조금이라도 쉬면 아이의 상태가 바로 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긴 이동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민아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민아가 처음으로 ‘엄마’를 말할 때

지극한 정성 덕분인지 민아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평생 말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시작한 언어치료가 2년째에 접어들며 결실을 본 것이다. 바람 새는 소리 같던 민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더니, 어느덧 옹알이를 지나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민아



“전에는 숨소리만 들려서 진짜 목소리가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소리를 내요. 민아가 말을 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처음엔 부정확해서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엄마가 필요한 상황에 저를 부르는 거였더라고요.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도 10단어 미만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민아가 ‘엄마’라고 해준 그 한마디에 다시 희망을 겁니다. 언어치료를 더 늘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죠. 이렇게 느리게라도 성장해주고 있어서 민아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민아가 가장 좋아하는 감각통합치료는 아이에게 성취감을 선물했다. 예민함이 높아 강한 울음으로만 감정을 표출하던 아이는, 이제 불편함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한층 편안해졌다.


천장에 매달린 그네에서 균형을 잡고, 튜브를 당기며 손의 힘을 기르는 시간. 예전에는 자세를 잡아줘도 금방 무너졌지만, 이제는 스스로 몸을 지탱하는 힘이 생겼다. 치료사의 동작을 모방하며 장난감을 조작하는 법도 차츰 익혀가고 있다.


그네에서 균형 잡으며 앉는 연습을 하는 민아



“전에는 똑바로 앉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자세가 잡히고 나니 민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어요. 언젠가 민아가 스스로 걷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겠지요. 저는 오늘도 민아가 힘차게 첫발을 내디딜 그날을 꿈꿉니다.”



누나를 세심히 챙기는 쌍둥이 동생

어머니는 요즘 민아의 쌍둥이 동생을 보며 마음이 복잡하다. 고작 여섯 살인 동생은 보조기기 없이는 서지 못하는 누나를 살뜰히 챙긴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늘 양보와 이해를 강요받으며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속상함이 앞선다.


“민아의 치료에 매달리느라 동생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어요. 문득 민아의 치료는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아의 발달도 중요하지만, 동생의 마음도 함께 돌봐야 우리 가족이 '보통의 삶'을 지켜낼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요즘은 동생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사진을 찍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 짧은 시간에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한때 갑자기 화를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표출하기도 했던 동생은 다행히 놀이치료를 병행하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누나를 아끼는 마음 뒤에 가려진 동생의 스트레스를 전문가의 도움으로 알게 됐어요. 비장애 형제인 동생이 누나라는 짐을 지기보다, 자기 삶을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도록 남편과 늘 고민합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꾸준한 치료 덕분에 민아는 성장하고 있지만, 그 성장을 뒷받침할 경제적 현실은 갈수록 녹록지 않다. 어머니는 민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아버지의 외벌이로 네 식구가 생활한다.


약을 먹는 민아



7년 전 같은 단지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형편은 사뭇 다르다. 맞벌이는 외벌이가 되었고, 전세는 월세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지출은 늘어날 텐데 수입은 한정적이라는 사실이 부모의 어깨를 짓누른다. 어머니가 자격증을 따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이유도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2년 뒤면 다가올 초등학교 진학도 큰 숙제다. 특수학교 진학을 원하지만 모집 인원이 턱없이 적다.


“이 지역 특수학교 3곳에서 한 해에 뽑는 인원이 학교당 6명 남짓이에요. 어제의 동료였던 치료 센터 친구들이 입학 때는 경쟁자가 되어버리죠. 입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집도 많아요.”


하지만 쌍둥이 동생의 교육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민아를 위해 이사를 결정하면 동생은 이곳에서 쌓아온 친구 관계와 생활 기반을 모두 잃게 된다. 두 아이 모두에게 최선인 길을 찾고 싶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내면에 강한 힘을 지닌 아이

눈앞의 현실에 막막해하다가도, 어머니는 민아를 보며 다시 힘을 얻는다. 민아는 웃음이 많고 매사에 의욕적인 아이다. 아직은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앉을 수 있지만, 어떻게든 제 힘으로 버텨보려는 기특한 ‘깡’이 있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는 온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보행 연습 중인 민아



“민아는 애교가 정말 많아요. 말을 못 해도 엄마 아빠 쪽으로 슥 쓰러지며 장난을 치죠. 칭찬받는 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칭찬해달라고 얼굴을 들이밀다가,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오면 스스로 박수를 쳐요. 마치 ‘나 정말 잘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활기 덕분에 힘든 치료도 버텨내는 것 같아요.”


네 살 무렵, 온 가족이 모인 명절날이었다. 반짝이는 공을 잡아보라는 응원에 민아는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이처럼 주변의 관심과 응원은 민아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최근 민아는 손을 높이 들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래에서 손을 까닥이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타인을 인지하고 보다 분명하게 반가움을 표현한다. 손을 잡아주면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는 시간도 늘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동작일지 모르지만, 민아에게는 거대한 진전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극희귀질환인 피트 홉킨스 증후군. 어머니는 신약 개발 소식에 기대를 걸면서도, 너무 먼 미래에만 매달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민아의 성장은 장거리 경주와 같기에, 가족 모두가 지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수치료를 받는 민아



“민아가 지난 1년 사이에 10센티미터나 컸더라고요. 잘 먹고 잘 자니 성장에 속도가 붙은 것 같아요. 아이가 크는 건 기쁘지만, 안아줄 때마다 목디스크 통증이 심해질 땐 겁이 나기도 해요. 제가 아프면 민아의 시계도 멈춰버리니까요. 그래서 남편과 교대로 휴식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민아가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니까요.”


어머니는 가끔 우리 집이 ‘네모난 바퀴’가 달린 수레 같다고 생각한다. 잘 굴러가지 않을 것 같은 그 수레를 움직이기 위해 엄마와 아빠, 민아와 동생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몸을 던진다. 가족의 사랑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저희 집 네모난 바퀴에 기꺼이 손을 보태주시는 분들께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름 모를 분들의 응원이 저희 가족에게는 말로 다 못 할 큰 힘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지금 저의 목표예요. 그런 하루가 모여 언젠가 민아가 스스로 걷고 말하는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습니다.”


민아 가족에게 전해지는 기부는 네모난 바퀴를 둥글게 깎아주는 일과 같다. 그 따뜻한 손길 덕분에 가족이 걷는 길은 조금 더 평탄해지고, 수레는 조금 더 가볍게 굴러갈 것이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굴러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 그 다정한 응원이 민아의 오늘을 지키고 있다.



취재 : 남궁소담, 이경은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