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가들 백두산에 오르다
활동보조 시간 확대,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 소망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2-08-27 13:04:35
몇 년전 오락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백두산을 등반 특집을 방영한 적 있다. 20시간이 넘는 거리에도
백두산 등반만을 꿈꾸며, 멤버들은 지친 몸을 최대한 이끌어내, 천지 땅을 밟는 감동을 선사했다.
그때
백두산 천지의 물을 떠올리는 장면은 감동의 한 드라마로 최고의 시청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만큼
백두산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통일에 대한 간절함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해발 2695미터
백두산 천지, 이 곳에 모든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애인활동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접근성 문제로 국내여행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권익이 한층 더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낯익은 얼굴을 다시 보니, 이들은 투쟁현장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의정활동으로
눈코 뜰새 없는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 지난 22일부터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8회 전국장애인단체 활동가대회’
참석하고 있는 총 80명의 참가자들이다.
올해 뜨거운 감자였던 4.11총선을 비롯해 장애계의 숙원이었던 발달장애인법 발의, 여전히 정류장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하는 이동권 운동, 보험차별 문제의 고리를 끊겠다는 집단진정까지. 다사다난했던 2012년 상반기 장애계 활동 속,
지친 심신을 단련하고, 교류의 장이 이곳 중국에서 펼쳐진 것이다.
앞서 장애인활동가대회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돼 올해
한국장애인재단 후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관으로
8번째를 맞는 것으로, 국내여행 위주로 해왔던 장소를 옮겨 두 번째 해외여행으로 중국이 선택됐다.
특히
백두산, 청산리대첩 유적지 등의 장소를 선택한 것도 장애인활동가들로 하여금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자는
취지이다.
22일 아직 채 해가 뜨지 않은 새벽 5시, 졸린 눈을 비비며 활동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들은
백두산에 대한 기대감과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피곤함도 무릅쓰고 삼삼오오 모여 밀려놓았던 대화의 장을 펼쳤다.
이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사연으로 이 자리에 함께했다.
부산심장장애인협회 송순조 사무처장은 장애유형에 대해 알리고자 참석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6월8일 심장장애에
대한 판정이 완화되면서, 심장장애인들에 대한 국가의 관심도 한층 높아진 것이 사실.
송 사무처장은 “심장장애인협회는 전국에 부산지역 협회만 유일하다. 그동안 심장장애인들이 재심사를 통해 등급외
판정을 받아 힘들었던 점이 많았는데, 이번 법 시행으로 등급이 올랐다는 장애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교류의 장 뿐만 아니라 심장장애 유형에 대해 좀 더 알리고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중 참가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곳은 역시
백두산 천지. 23일 4시간을 걸쳐 달려온
백두산 앞에서
활동가들은 저마다 감탄과 함께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기 바빴다.
1400여개의 계단을 타고 도착한 곳이 바로 사진으로만 보던
백두산 천지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활동가들에게
수천개의 계단은 무리일 터. 그들을 위한 가마꾼들이 등장했다.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가마로 자리를 옮긴 장애인들은
두 명의 중국 가마꾼들의 힘으로
백두산 천지를 등반했다.
30분 후, 펼쳐지는 기막힌 경관. 다행히 날씨가 너무나 좋아 한 눈에 들어오는 천지의 모습에 활동가들은 저마다 감탄을
쏟아냈다. 가마꾼들의 힘을 빌려 조금 늦게 천지에 도착한 영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정규 소장도 그림보다 멋진 천지의
경관에 잠시 동안 말을 잃었다.
10년 전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최 소장은 2년 동안 병원에, 그 후에도 몇 년을 집안에서만 생활해왔다. 그런 그에게
홀몸이 아닌 활동보조인과 함께 떠난
백두산 천지관광은 ‘할 수 있다’라는 큰 자신감과 함께 동포애에 대한
뭉클한 마음까지 들 터.
조용히 관람을 하던 그에게 조심스레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묻자, “비밀입니다”라고 답한 최 소장은 이내
쑥쓰러운 듯 웃으며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인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최 소장이 받고 있는 시간은 150시간. 하지만 마비로 인해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는 그에게는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이에 최 소장은 "24시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니, 그래도 최대 300시간은
제공돼야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어 가마꾼을 통해 뒤늦게 도착한 또 한명의 장애인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김동수 팀장 또한 이곳 저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지를 바라보던 김 소장은 “다음에 올때는 북한 땅을 밟고 천지를 보러왔으면 좋겠다”며 조용한 소망을
빌었다.
올해 들어, 발달장애인법 발의 등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자 경북지적장애인복지협회 고형달 사무국장은
"올해는 발달장애인법 발의 등으로 인해 뜻 깊은 해다. 완전히 통과되진 않았지만,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성과가 있었다"며 "
앞으로 더 나아가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회차원에서도 열심히 돕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후, 천지를 내려와서도 전용버스를 이용해 금강대협곡, 제자하 등
백두산의 주요 관광지를 돌며, 오랜만에 만끽하는
휴가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백두산 천지와 중국의 여러 유적지들, 하지만 ‘옥의 티’는 존재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편의시설과
이동수단 문제가 여전히 팽배하고 있는 현실에 장애인들은 진땀을 빼야만 한 것.
저상버스가 발달되지 않은 중국의 경우, 관광버스를 계단이 높은 2층버스를 이용해, 휠체어장애인들이 누군가에 업히거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슬아슬한 계단을 여러번 밟아야했으며, 접근성이 부족한 식당때문에 휠체어를 탄채 계단을 내려오는
수모까지 감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화장실의 용변처리 문제. 좌변기가 없는 중국의 화장실 문화에 뇌병변1급인 김동수 팀장은 신변처리를
위해서는 비교적 시설이 잘 갖춰진 호텔까지 가야 이용할 수 임을 토로했다.
김 팀장은 “대체적으로 중국 관광지에 장애인을 배려한 부분이 별로 없다. 경제적으로 발전을 하고 잇는 중국인데,
여전히 장애엔 대한 인식은 바닥인 수준인 것 같다”며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인데, 휴게소 화장실은 엄두조차 못 냈고,
백두산 안내소에 경사로와 화장실 앞 점자표시,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지정이 돼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문을 여니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어 김 팀장은 “여행 자체는 즐거운데, 하나하나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아쉬울 따름”이라며 “남는 기간동안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을 좀더 기대해보고, 다음번에는 좀더 즐거운 여행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충북지체장애인협회 유성종 사무처장은 "즐거운 여행이었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장애인활동을 좀더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일상으로 돌아가 변함없이 이동권 보장 등 장애인의
권리신장을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제8회 전국장애인단체 활동가대회는 22일 중국 심양공향으로 출발,
백두산 천지관람, 광개토대왕릉비 등
유적지를 관람한 후, 아쉬운 마음을 이끌고 25일 오후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