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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필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前 고용노동부 장관
파티와 사교 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상류층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침실이 6개나 있는 저택에 살고 있었다. 부인은 사회봉사와 교회 자선사업에도 열심이었다. 어느 날 부부가 파티에 가려는데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제대해 집으로 가는데 전우 한 명을 데려갑니다. 그 친구는 부상을 입어 두 다리와 팔 하나를 잃었고 얼굴에 화상을 입어 눈과 귀 하나씩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갈 데가 없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안 돼! 잠시 왔다 가는 건 몰라도 안 된다. 내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아버지 체면은 뭐가 되니? 그러니 너만 오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밤 한 시골 경찰서에서 메시지가 왔다.
"두 다리와 팔 하나가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 하나와 귀 하나가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습니다. 머리에 권총을 쏴 자살했습니다. 그런데 신원 증명서를 보니 아드님 같습니다."
대부분이 느끼는 장애에 대한 인식은 '돌아오지 않은 아들'의 어머니 같을 것이다. 불편하고 보기 흉하고 비용 많이 드는 장애인 가족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차장의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는 비(非)장애인들이 있다. 이들은 평소 장애인이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이용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볼일을 보러 다니려면 전쟁 치르듯 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긴요한 일 아니면 대부분 포기하고 살게 된다.
고(故) 장영희 선생이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을 이용할 때 겪은 에피소드를 읽은 적이 있다. 지하 1층 한국 문학 자료실을 이용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 비상문을 열어야 하는데, 비상문에 경보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은 선생이 올 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서로 연락해 경보장치를 끄고 출입하게 해 줬다는 것이다. 또 살던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층계를 목발로 올라가는 광경을 이웃이 보고 911에 신고를 했다. 그러자 구조대원들이 소방차 두 대를 타고 와서 선생을 올려주었다. 황송하고 미안해하는 그에게 소방대원들은 "장애인이 입주하면 소방서에 신고해야 화재가 났을 때 특별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다"며 오히려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나라의 '국격'이라고 여긴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도 장애인 주차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상식인 나라, 장애인 한 사람이라도 불편을 겪게 해선 안 된다는 공존의식이 상식인 나라. 이런 나라와, 장애인 정책을 펼치면서도 장애인은 보기 흉하고 부담스러운 남이란 인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품격이 다르다.
장애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불가항력으로 겪는 것이다. 특히 장애는 대부분이 피해 갈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몸 곳곳에서 불편함이 생기는데 바로 이것이 장애다. 장래에 겪을 나의 장애를 생각해서라도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장애인이 편하면 누구나 편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 수월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장애인의 능력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경제 수준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