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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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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수 선수와 함께한 맛있는 시간🍪

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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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보다 정성이 중요한 쿠키처럼🌻

유연수 전 제주FC 선수와 함께한 ‘그대로 괜찮은 쿠키’ 베이킹 클래스





그대로괜찮은쿠키 베이킹 클래스 참가자 단체사진




토요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공유 주방에 40여 명이 모여 열심히 쿠키를 만든다. 주말 데이트를 나온 연인도, 아직 앞치마가 길어 발끝에 끌리는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부도 있다. 모두가 반죽을 펴고 쿠키틀을 누르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이 만드는 쿠키는 어딘가 특별하다. 다리가 한쪽이 짧다. 이름은 ‘그대로 괜찮은 쿠키(그괜쿠)’. 쿠키에 정성과 마음이 담겼다면 모양은 어떻든 괜찮다는 의미다.





유연수 선수




한국장애인재단이 유연수 전 축구선수, 캠페인 크리에이터 ‘디마이너스원’과 함께 기획하고 SK이노베이션이 후원한 베이킹 클래스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열렸다. 유선수는 참석자들과 함께 그괜쿠 쿠키를 직접 만드는가 하면 스피치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직접 싸인한 축구공과 티셔츠, 장갑을 전달하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다. 유선수가 전하는 회복의 메시지와 베이킹의 즐거움, 가족 간 사랑이 넘쳤던 클래스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그대로괜찮은쿠키 베이킹 현장




장애 그 후... 많은 것이 달라진 일상


지난 1월 한국장애인재단과의 인터뷰 뒤 3개월 만에 만난 유선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재활 운동을 거의 매일 할 때는 어려웠던 영화, 외식 등 취미 생활로 스케줄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차량을 구입해 운전 연습도 새로 했다.





유연수 선수




“선수 시절에도 운전은 할 줄 알았지만 차는 없었어요. 최근에 차가 필요할 것 같아서 차를 구입했고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연습을 했죠. 장애인이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휠체어에서 운전석으로 옮겨타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해요. 원래 휠체어를 접어서 넣는 것도 제가 해야 하는데 거기까진 아직 연습을 못했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죠. 차에 새로운 장치들을 설치해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방법도 새로 익혔어요. 예를 들어 브레이크는 밟는 장치 대신에 핸드 컨트롤러라는 장비를 써요. 밀거나 당기면 브레이크가 작동했다가 풀리는 식이예요.”



3개월간 갈고 닦은 운전 실력은 벌써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베이킹 클래스가 열린 당일도 그가 생활하고 있는 전주에서 서울까지 4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 왔다고 한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지내는 동안 유선수는 오랫동안 생각만 해오던 유튜브도 시작했다. 장애를 가지게 된 후 생활하면서 불편을 느꼈던 상황들을 떠올리며 그 순간에 적응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팁들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 유연수 선수 채널www.youtube.com/@YeonsuTV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는 데도 시간을 많이 들이고 있다. 여러 운동을 접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향후 실업팀 선수로 활동할 종목을 탐색한다는 의미도 있다.





유연수 선수




“사격, 탁구, 펜싱, 볼링, 싸이클 등 그동안 정말 많은 운동을 해봤어요. 가장 많이 한 운동은 탁구와 사격이에요. 재미도 재미지만 실업팀에서 저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주시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탁구는 참 재밌어요. 베이킹 클래스가 있기 이틀 전에도 하루에 4시간 동안 탁구만 쳤을 정도예요. 백핸드, 포핸드, 커브 등 여러 기술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막 쳐보다가 나중에는 그런 기술들을 알게 되면서 실력이 늘더라고요. 기술을 익힐수록 공이 선 안으로 딱 맞게 떨어지고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흥미가 더 생겼어요.”



생소했던 사격도 의외로 축구 골키퍼 시절 했던 운동과 비슷한 면이 많아 유선수가 최근 흥미를 보이고 있는 운동 중 하나다. 사격도 호흡을 조절하고 영점을 맞추는 등 집중하는 고된 연습을 하면서 '골키퍼 때 했던 운동과 유사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8살부터 축구 선수 생활을 한 유연수 선수.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그지만 예상외로 '베이킹 경험자'였다. 평소 요리를 해본 적도 별로 없지만 대학교에 다닐 당시 교양 수업으로 베이킹 과목을 수강했다고 한다. 학점도 A+를 받을 만큼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것들


이날 베이킹 클래스에서 유선수는 참석자들과 함께 어울려 2시간여 가까이를 쿠키를 만들며 보냈다. 베이킹 클래스에 혼자 온 참석자 중 일부는 한 테이블에서 유선수와 반죽을 밀고 쿠키틀로 모양을 낸 뒤 오븐에 굽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유선수는 참석자들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평소 유선수의 팬으로서 베이킹에도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됐다는 김하경 씨(24)는 오늘 행사를 통해 여러모로 유선수와 공감하고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유연수 선수, 김하경 참가자




김하경 참가자

“저는 유선수가 축구선수일 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선수님이 장애를 가진 후 여러 매체에 나오시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됐어요. 저도 예전에 핸드볼 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잘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선수의 SNS를 통해 베이킹 클래스에 대해 알게 됐고, 행사의 좋은 취지도 너무 뜻깊다고 생각해 참여했어요.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는 선수님을 먼발치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베이킹을 같이하면서 계속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어요. 직접 만나본 유선수는 훨씬 유머러스하고, 처음 본 사람도 마치 오래 본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는 분이었어요.”



같은 테이블에 있었던 김민수 씨(32)는 이번 베이킹 클래스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민수 참가자

“장애인은 위축돼 있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선수를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밝고,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바뀐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것도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가 돼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피치에서 유선수가 자신의 바뀐 환경을 기회로 만든 사례를 소개해주셨는데 이 점도 유익했던 것 같아요. 저도 부정적인 상황을 겪게 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두 사람은 평소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민수 씨는 사업체를 통해 평소 후원을 하고 있고 김하경 씨 역시 복지단체 후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발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수 참가자, 김하경 참가자




김하경 참가자

“이번 행사를 통해 장애는 나와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불편한 부분을 지닌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면 아직은 그런 인식이 완전히 우리 사회에 자리 잡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직 장애인들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이 많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인프라도 많이 부족하고요. 환경적인 부분들과 함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접점들이 많아졌으면 좋을 거 같아요.”



김민수 참가자

“한국은 아직 다양성이 완전히 존중받는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선수처럼 사고가 이슈화돼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애인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위축돼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인식들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어도 이번 베이킹 클래스 같은 행사를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많아져서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더 개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의 가치, 세대를 거쳐 전파되길


이날 베이킹 클래스에는 5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부터 중학생까지 많은 학생들도 참여했다. 쉽지만은 않았던 베이킹 과정을 순조롭게 끝낸 어린이 참석자들은 행사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쿠키를 구웠던 최승연 양(15)은 행사 이후 장애인에 대한 감정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최민규 참가자, 최승연 참가자




최승연 참가자

“제가 다니는 중학교 옆 반에도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는데, 사실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별로 좋지는 않아요. 다음 주부터 학교에 가면 저는 더 잘 대해줄 거예요. 장애인 친구들도 저랑 똑같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유연수 선수처럼 그 친구들이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점이 멋지기도 해요.”



승연 양과 동생 정연 양(10)은 이날 만든 쿠키를 친구, 할머니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정성스레 만든 쿠키가 뜻깊은 의미와 함께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예정이다.



행사에 참석한 부모님에게도 이날 행사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어머니 조정임 씨는 단순히 아이들과 쿠키를 만드는 행사일 거라 생각하고 참석했는데, 그보다 더 좋은 행사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잘 되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최민규 씨는 베이킹 클래스를 통해 평소에 자신도 모르게 장애를 뭔가 '틀리다' '이상하다' 와 같은 식으로 인식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베이킹 클래스를 진행하면서 이 생각이 바뀌어 비장애인과 조금 다를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익숙한 일상에 낯선 장애가 녹아들 수 있도록


이렇게 많은 참석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준 '그괜쿠'는 캠페인 크리에이터 '디마이너스원'이 처음 시작한 캠페인이다. 디마이너스원은 2017년부터 그괜쿠 캠페인을 시작했고 캠페인으로 모금한 돈을 한국장애인재단에 기부하면서 재단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김동길 공동대표, 김장한 공동대표




김동길 공동대표

“2017년 처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그괜쿠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따로 마케팅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에 쿠키를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셔서 처음 단체 주문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죠. 현재까지 1000개가 넘는 학교나 기업에서 저희 쿠키를 이용해 주고 계세요. 저희가 쿠키와 함께 인식개선 교육 가이드북도 제공하는데, 가이드북은 한국장애인재단에서 검수를 해주셨어요.”



디마이너스원과 한국장애인재단은 단순히 기부자와 기부를 받는 단체 사이를 넘어선다. 처음 그괜쿠 쿠키로 수익이 났을 무렵 디마이너스원은 수익금을 기부할 장애인 단체들을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쿠키의 모양이 논란이 될까 우려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장애인재단은 다른 답변을 내놨다.






김장한 공동대표, 김동길 공동대표




김장한 공동대표

“재단에서는 저희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이 메시지는 논란될 메시지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저희도 캠페인을 처음 진행할 때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한 메시지를 만든다는 게 우려스럽고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곳도 있어서 주눅이 들 뻔했어요. 그런데 재단 덕분에 저희도 저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캠페인'을 슬로건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나 메시지를 만드는 디마이너스원은 창의적인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실종 아동들을 찾기 위해 놀이공원에 설치한 키재기판, 독립운동을 하다 퇴학당한 독립운동가들의 늦은 졸업식 등이 대표적이다. 그괜쿠 쿠키가 장려하는 가치처럼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 창의성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김동길 공동대표

“저희가 캠페인을 할 때 익숙한 곳에서 다른 것을 보여주고, 다른 장소에서 익숙한 것을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익숙한 것과 생소한 것을 섞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창의성인 셈이죠. 장애인을 차별하는 분들은 대부분 장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접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창의성을 이용해 모르는 것을 익숙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봐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들


이날 유선수는 클래스에 앞서 미리 스피치를 준비했다. 스피치에는 장애라는 ‘낯섦’ 속에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 많이 담겼다. 사고 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던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이동하고,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가리는 것부터가 훈련해야 하는 일이었다. 고통 속에서 유선수를 구한 것은 선수 시절부터 그가 유지해 온 '성실함'이었다.





유연수 선수




유연수 선수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저는 선수시절부터 성실하게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편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축구선수 시절부터 체격이 좋아서, 팔다리가 길어서 프로팀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뒤에 제 성실함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새벽 1시간, 오전 1시간반, 오후 2시간, 저녁 1시간 반~2시간씩 운동량을 매일 채우며 선수시절을 보냈거든요.”



장애를 가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재활운동을 쉽게 습득하고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는 유선수를 두고 사람들은 '역시 선수 출신은 다르다', '체격이 좋으니 다르다'는 말을 하지만 그 뒤에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고 유선수는 설명한다. 휠체어에 타는 훈련을 할 때도 근력이 부족해 휠체어에 쉽게 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 근력운동을 꾸준히 했다. 그런가 하면 유선수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석자들을 웃기기도 했다.



유연수 선수

“병원에서 퇴원하고 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장애인이어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많고요. 볼링, 탁구 등 웬만한 운동을 다 할 수 있고 영화관은 50% 할인이 돼요. 공영주차장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 비행기는 제일 먼저 탈 수 있죠. 스포츠 경기도 모두 공짜로 누릴 수 있어요. 이 혜택들을 다 누리기 위해 집에 붙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대로 괜찮은 쿠키 베이킹 현장



이날 유선수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원하는 성과를 얻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같은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줬다. 바로 성실함과 긍정적인 마음이다. 쿠키가 모양은 제각각일지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정성과 마음이 똑같은 것처럼. 베이킹 클래스에 참석한 참가자들의 마음에도 희망과 용기가 피어날 수 있기를, 또 그것이 주변으로 멀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취재 : 황신아, 선아

사진 : 홍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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